[광화문에서/정경준]기업이여, ‘도덕’을 팔아라

  • 입력 2008년 11월 25일 02시 59분


금세기 초만 해도 영국의 소비자들이 우간다산(産)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내는 돈 가운데 현지 커피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고작 0.5%였다. 커피 한 잔에 4000원이라면 원두 재배농가는 20원밖에 벌지 못한 셈이다.

국제 빈민구호기구 옥스팜은 생산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그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자는 공정무역(fair trade) 운동을 펼쳤다. 네슬레, 스타벅스, 맥도널드 등 굴지의 회사들이 하나 둘 동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YMCA가 전국 지역조직 및 자체 커피숍 ‘카페 티모르’ 등을 통해 ‘동티모르 평화 커피’를 팔아 얻은 수익금을 현지 농가에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극빈층뿐만 아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공사 현장을 전전하다 일감이 끊기는 바람에 길거리로 내몰린 일용직 노동자, 후원금이 크게 줄어들어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보육원 아이들, 무료 급식소 앞에 길게 늘어선 쪽방촌 사람들….

무료 급식소 자원봉사 경험이 있는 한 증권사 사장은 “‘다음 급식 때까지 버티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며 더 달라고 애원하는 이들이 어찌나 많은지…”라며 마음 아파했다. 2008년 겨울 한국의 소외계층은 춥기만 하다.

국내 최대의 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간 1985억 원을 모았다. 이 가운데 71%인 1416억 원이 기업의 기부일 정도로 기업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기업들의 자선은 연말연시 일과성(一過性) 냄새가 짙다. 경쟁 기업이 얼마를 냈는지 지켜본 뒤 체면을 고려해 마지못해 기부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준조세(準租稅)나 다름없다. 올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져 이나마 선뜻 낼 기업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라고 한다.

이 곤경을 이겨낼 해법은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소비자에게 ‘도덕’을 파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비슷한 품질이라면 도덕적인 기업, 착한 기업의 제품을 고르게 마련이다.

코오롱스포츠는 수익금 전액을 백혈병이나 소아암 환우(患友)를 돕는 데 쓰는 ‘새 생명 티셔츠’를 5000장 한정 판매하고 있다. 의류업계 최악의 불황인 데다 장당 5만5000원으로 결코 싸지 않지만 지난달 23일부터 한 달여 만에 절반이나 팔렸다.

온라인 쇼핑몰 GS이숍은 국제 아동권리기관 세이브더칠드런의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키트’를 팔고 있다. 저(低)체온증에 시달리는 말리의 영유아를 돕기 위한 이 제품은 GS이숍에서 최근 4주 연속 판매량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최상의 품질을 가장 싼 값에 사려는 실용적 소비, 차별화를 위해 고가(高價)의 제품을 선택하는 과시적 소비에 이어 도덕적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작년 11월 LG경제연구원이 국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품질이 같다면 사회적 책임(CSR)을 잘 이행하는 기업의 제품을 더 비싼 값으로도 살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88.7%였다. 이제 소비자들은 ‘도덕의 아우라’를 입고 먹고 쓰고 싶어 한다.

기업도 도덕을 마케팅의 무기로 삼는 시대가 됐다. 경영학의 거장(巨匠)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목적은 바로 고객 창조”라고 말했다. 착한 소비자는 착한 기업을 만들고, 착한 기업은 착한 소비자를 만든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