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명박과 박근혜

  • 입력 2008년 11월 25일 02시 59분


요즘 정부와 한나라당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공회전(空回轉)하는 차량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시급한 개혁과제를 끌어안고만 있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한다. 정기국회 80여 일 동안 통과시킨 법률안은 5건에 불과하다. 내년 예산안과 2000건에 가까운 법안은 언제 처리될지 기약이 없다. 경제위기 대처는 국민의 신뢰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당정(黨政) 간 손발도 안 맞고, 여권 내부의 불협화음도 심각하다.

불협화음의 근저에는 이명박-박근혜계 간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양측이 물과 기름처럼 겉돈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같이 밥도 잘 먹지 않을 정도라니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하기 어렵다. 당 업무에 방관하는 사람이 많아 “(172명의 의원 중) 100명 내외만 움직이는 것 같다” “여당은 여당인데 집권 여당은 아니다” 같은 자조의 말이 나온다. 친이(親李) 친박(親朴)은 그나마 정직한 편이다. 의원들의 당내 거취와 관련해 월박(越朴), 복박(復朴), 주이야박(晝李夜朴) 같은 신조어가 난무한다.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이 대통령의 책임이 특히 무겁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친박계를 소홀히 대함으로써 정작 여당 내부의 통합과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친박 인사들에게 변변한 당직이나 공직을 주지도 않았다. 지난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인사 19명이 재입당한 뒤 대통령은커녕 당 지도부와 여태 식사 한 끼 한 적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박 전 대표 쪽도 국가의 위기 국면과 국민을 생각한다면 한(恨)풀이에 매달릴 상황이 아닌데도 국정 방관 차원을 넘어 노골적으로 발목을 잡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광우병 파동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더니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에서는 야당 이상으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나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미국 버락 오바마 차기 대통령이 보여주는 것처럼 친박 인사들을 품 안으로 끌어들여 명실상부하게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당내 경쟁세력을 화끈하게 끌어안지 못하는 속 좁은 정치로 어떻게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박 전 대표도 계속 뒷전에만 머물며 변죽을 울릴 것이 아니라 집권여당의 책임을 함께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공직을 맡고 안 맡고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가 걸어야 할 길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