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좋은 기억, 나쁜 망각

  • 입력 2008년 11월 26일 03시 02분


노무현 정부가 막 들어선 때니 5년 전 초여름 무렵인 것 같다. 낮 12시쯤 예고 없이 소나기가 내렸다. 후배와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비를 맞으며 건널목의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기다렸다. 바로 옆에 갓 입사한 듯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 2명이 우산을 각자 들고 서 있었다. ‘같이 좀 쓰자’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신호등이 초록 색깔로 바뀌어 광화문우체국 쪽으로 길을 건너는데 반대편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불편한 걸음으로 비를 맞으며 건너왔다. 우리와 비슷한 속도로 걷던 두 여성 중 한 명이 건널목 중간쯤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우산을 접어 다소곳이 노인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동료와 우산을 같이 쓰고 종종걸음으로 길을 건너 무교동 쪽으로 사라졌다.

세상이 갑자기 환하게 보였고 두 여성의 등 뒤는 더욱 환했다. 눈이 부셨다고 하면 허풍을 떤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 기억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젊은 두 여성은 황색 칼라에 하얀 원피스와 군청색 치마를 입었다. 남루한 차림의 노인은 의외의 상황에 눈이 둥그레졌던 것 같다. 몇 초 남짓한 그 짧은 순간은 느린 동작으로 재생되곤 했다. 쉽게 마주칠 수 없는 감동을 더 오래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선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때 후배 역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는 “쫓아가 프러포즈라도 하고 싶었는데 용기를 못 냈다”고 나중에 술자리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루소는 “진정한 기억이란 많은 세월을 거쳐도 달라지지 않는 느낌이다…정말 잊혀진 것은 잊혀져도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던가.

몇 천 원밖에 하지 않는 우산을 준 것에 그렇게 감동을 받고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조건 없이, 반사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불길한 예고가 사람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건지…. 연말은 다가오는데 온정의 손길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소식에 5년 전의 ‘좋은 기억’을 되살려 봤다.

흐뭇했던 것도 잠시, 검찰의 ‘친노(親盧) 게이트’ 수사가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한 것을 보고 마음이 다시 무거웠다. 20년 전 육사 동기끼리 정권을 주고받아도 서너 달 동안 5공 비리 수사가 이어졌고, 그 후에도 규모 차이는 있더라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사정 수사는 되풀이됐다. “그 사람들은 정권이 바뀔 줄 몰랐던가 보죠.” 출근길에 오르려는데 안사람이 무심코 한마디를 툭 던진다. 뭐라고 답을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이미 구속된 정화삼 씨는 물론이고 수사 대상에 오른 노건평 박연차 씨는 잠시 행복하기 위해 ‘역사의 교훈’을 너무 쉽게 잊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실존주의를 주창한 니체는 망각 예찬론자로도 통한다. 오죽하면 ‘행복하려면 잊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까지 했을까. 니체가 잊어버리라고 갈파한 대상 역시 역사였다. 친노 인사들이 너무 쉽게 망각한 5년, 10년 전의 역사와는 차원이 한참 다르긴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25일 충청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요즘 보니 내 측근이 참 많더라”며 언론 보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노 정권 때 실세 중 한 사람은 “우리는 (정권이 바뀌어도 쇠고랑을 찰 만큼) 바보가 아니다”라고 했다던가.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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