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취약계층을 다루는 이 대통령의 방식은 이런 식이다. ‘얼마든지 도와줄 수는 있지만 공짜로는 안 된다, 자활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본 경험에서 터득한 원칙이다. ‘생산적 복지’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제의한 ‘비핵 개방 3000’ 구상도 이런 원칙과 맞닿아 있다. 핵을 포기하고 체제를 개방하면 10년 안에 주민 1인당 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올려 주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받아만 준다면 달성 못할 목표도 아니다. 북이 응했더라면 핵 문제와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매사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게 세상 이치이다. 다시 노숙인 자활사업 얘기로 돌아가자. 이 시장이 당초 구상했던 사업 자체는 유감스럽게도 실패했다. 노숙인들은 체력이 약하거나 신체장애 등으로 일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의지도 갈수록 약해졌다. 신용불량 탓에 금융기관 이용도 어려웠다. 1000만 원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1년 만에 임대아파트를 제공받은 노숙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이 사업이 밑거름이 돼 다른 ‘새끼’사업이 많이 만들어졌다. 지금 서울시는 노숙인을 상대로 건강회복, 신용회복, 직업교육, 저축관리, 자활근로, 주거지원 사업을 별도로 실시하고 있다. 현실에 맞는 맞춤형 지원으로 세분한 것이다.
‘비핵 개방 3000’ 구상도 취지는 좋고 원칙은 옳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수령체제 유지가 지상과제인 김정일 정권이 핵 포기와 개방이라는 조건에 솔깃할 리 없다. 3000달러 소득이라는 과실도 꿀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진정성을 강조한들, 상대방이 감내할 수 없는 제의라면 무슨 소용인가. 더구나 북은 이미 별다른 위험부담 없이 호주머니를 불릴 수 있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발행한 어음까지 손에 쥐고 있다. 6·15선언과 10·4선언으로 포장된 어음을 현금화할 수만 있다면 아쉬울 게 없는 처지이다. 요즘 남북관계를 볼모로 어음을 결제하라고 악다구니 쓰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는가.
이 대통령은 북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때론 전략”이라고 했다. 북의 위협에 겁먹어 금방 나긋해지기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이 기회에 ‘비핵 개방 3000’을 밑거름으로 삼되 좀 더 현실을 반영하고, 북이 감내할 수 있는 다른 맞춤형 제의들을 구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만 있는 게 아니다. 가던 길이 꽉 막혀 버리면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도 실용의 한 방법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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