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6월 연방 의회는 이틀에 걸친 열띤 논쟁 끝에 통일 독일의 수도를 베를린으로 결정했다. 그 후 1994년에 연방 의회는 신수도의 싹쓸이나 쏠림 현상을 슬기롭게 막기 위해 ‘베를린-본 법’을 제정했다. 그에 따라 13개 연방 부처 중 6개 부처는 장차관실만 베를린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본에 그대로 제1청사를 유지하고 있다. 국방부 보건사회부 교육과학부가 그렇다. 30여 개의 연방 청(廳) 중에선 20여 개 청이 천도 후 본으로 이전해왔다. 특히 기후변화협약사무국, 사막화방지협약사무국, 자원봉사사무국 등 17개 유엔 기구의 본부를 유치함으로써 본은 비록 연방 수도는 아니지만 계속 연방도시요, 그보다도 유엔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47년 지나도 안변한 독일 옛수도
내가 처음 본을 방문한 것은 1961년, 달러에 대한 마르크 환율이 4.20에서 4.00으로 독일 화폐가치가 인상될 무렵, ‘라인 강의 기적’이 한창 구가된 시절이었다. 같은 분단국이라지만 서독의 부흥과 번영을 눈앞에 보며 멀리 4·19혁명 후, 5·16군사정변 전의 한국 정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었다. 나는 ‘타향의 봄에 고향의 겨울을 생각한다’는 시구절을 곧장 읊조려 봤다. 당시 우리 젊은 유학생들은 춘궁기의 고국을 벗어나 독일에 건너 온 것을 ‘도독(渡獨)질’한 것이라 자조(自嘲)하며 괴로운 양심을 표백했다.
그로부터 50년, 독일은 그 사이 평화 통일을 이루고 베를린으로 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터전으로서 본은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1961년 이후 이곳에 오면 묵곤 하던, 시청 뒤의 옛 호텔도 그대로 있고 그 밑의 양복 가게, 모자 가게도 그대로다. 전에 자주 들른 찻집도, 포도주 주막도 그대로다. 도로뿐만 아니라 도로망도 변함이 없다. 그처럼 옛 그대로의 도시 모습이 타향을 헤매는 겨울 나그네에게 오히려 고향에 귀향한 듯한 야릇한 향수를 일게 한다. 라인 강변에서 보낸 젊은 유학시절에 대한 향수를….
목숨이 세상에 태어난 그 지붕이며 마을이며 저잣거리가 불과 10년만 지나도 고향이라고 찾아가 보면 송두리째 파헤쳐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향촌(?)풍물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라는 상실감을 비단 심정적 차원만이 아니라 물리적 차원에서도 에누리 없이 실감케 하는 우리나라 도시화의 파멸적 폭력-그러다 보니 고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삶의 옛 모습을 오히려 외국에서 만나 야릇한 감회에 젖게도 된다.
바르샤바에서는 한국을 주제로 한 교향곡 5번을 작곡하기도 한 펜데레츠키의 75세 생일 음악축제가 나흘 동안 개최되고 있었다. 마지막 날엔 오페라 극장에서 그의 대편성 합창 교향곡 7번 ‘예루살렘의 일곱 문’이 공연됐다. 대통령 부인, 국무총리, 문화부 장관, 바르샤바 시장, 그리고 러시아의 쇼스타코비치 미망인이 객석을 메운 이날 공연은 지휘대에 작곡가가 나타나자 2000명의 하객이 일어나 생일축하 노래를 합창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외국서 맛보는 야릇한 고향정취
제국주의 침략과 소비에트 체제의 압제를 다같이 겪은 폴란드는 아마도 20세기 역사의 비극을 가장 처절하게 한국과 공유한 나라다. 세속을 초월한 라틴어 성가에 바탕 한 그의 ‘폴란드 진혼곡’은 바로 폴란드가 경험한 현대사의 역사적 진혼곡이다. 그에 비해 그가 처음으로 라틴어 아닌 세속어의 독일 시에 곡을 붙인 교향곡 8번 ‘덧없음의 노래’는 오히려 세속과 역사를 초월한 인생무상을 노래하고 있다(내년 5월 서울 공연 예정).
펜데레츠키와 그의 고국, 그리고 유럽이 ‘가을’을 맞고 있다. 릴케의 ‘위대한 여름’을 회상하고 헤세가 삶의 덧없음을 노래한 유럽의 가을. 타향의 찬란한 가을에 고향의 폭풍우가 휘몰아친 여름을 생각했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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