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성원]G20과 APEC 그 후

  • 입력 2008년 11월 28일 02시 59분


22, 23일(현지 시간) 이틀 동안 제16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페루 리마의 컨벤션센터 안팎은 따스한 햇살 속에서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금융·실물 경제위기의 그늘을 반영하듯 21개 회원국 지도자들은 “기업들에 은행 자금을 풀려 해도 뜻대로 안 된다”, “정부가 무슨 조치를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주가가 떨어진다”며 당혹감과 무력감을 토로하곤 했다.

정상들이 공동선언문에서 현 세계적 금융위기를 ‘우리가 경험한 가장 심각한 경제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위기 해결을 위해 ‘신속·단호한 행동’과 ‘필요한 모든 경제적 재정적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의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정상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자, 양자 회담을 통해 자국의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길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APEC 회의 직전 브라질리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회동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무역불균형 시정’을 내세우며 자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요청했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칠레도 (한국처럼) 18년 전 보호무역을 철폐하고 개방을 향한 정책 전환을 통해 발전을 이뤘다”며 뉴질랜드 싱가포르 브루나이와 함께 추진 중인 ‘P4’ 자유무역협정(FTA)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은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인천공항과 리마 간 직항로 건설에 깊은 관심을 표했고, 이 대통령은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이름과 ‘주특기’를 일일이 제시하며 페루의 에너지·광물 자원 개발사업 참여를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같은 쌍무적 호혜적 거래를 지배하는 법칙은 철저한 ‘경제 논리’였다.

평화니 번영이니 하는 추상적 구호보다는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tangible) 경제적 효과가 지구촌 정상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가르시아 대통령이 “성장을 통해 소득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복지도 확대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한국의 성장전략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지구촌 반대편 나라에까지 강한 인상을 심어준 대한민국의 성취에 잠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국이 앞서 15일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 멤버로 참가하고 ‘워싱턴 합의’의 구체적 이행계획 작성까지 맡게 된 것도 세계 13위로 성장한 경제규모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한국이 언제까지 그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싱크탱크는 G8을 향후 G16으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한국을 멤버에서 빼버렸다. 앞으로 한국의 설 자리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힘을 모아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세계가 무시할 수 없는 경제강국 반열에 오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기업 경쟁력을 옥죄는 규제의 완화와 세제개편은 여야 간, 심지어 여여(與與) 내부의 이해대립에 발목이 잡혀 있고, 저축은행과 건설업 조선업계의 부실을 정리하고 자금시장 경색을 타개할 정부의 경제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는 예산안 처리 시한(다음 달 2일)이 코앞에 다가왔건만, 예산심사 소위조차 구성하지 못한 상임위가 허다하다.

2차 G20 회의가 열리는 내년 4월 이후 한국은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박성원 정치부 차장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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