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체의 비관론을 금지시킨 러시아가 아니라면 비관적인 전망을 다소 과격하게 했다 해서 지나친 박대를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제도권 전문가들의 전망은 ‘사후약방문’이었기 때문에 재야의 고수들이 투자가들의 갈증을 채워 주는 역할을 담당해 왔었다.
일부 비관론자가 주장하고 있는 코스피 500 선 가능성을 일단 점검해 보자.
지금 경제위기가 10년 전 외환위기와 같다는 전제로 비교한다면 당시 코스피는 1년 반 사이에 850(1996년 10월)에서 277(1998년 6월)까지 약 70% 떨어졌다. 최저점의 증시 시가총액은 63조 원으로 1997년 당시 국내총생산(GDP) 490조 원의 13% 수준까지 추락했다.
현재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은 약 550조 원. 지난해 말 GDP 900조 원의 60%로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보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여기서 반 토막이 난다 해도 GDP의 30% 수준이니 그리 무리한 주장도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가 기준으로 달러로 계산한다면 그림이 조금 달라진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증시 하락률을 달러로 환산하면(당시 코스피 277, 환율은 1400원) 80% 정도 하락했다. 대공황 때 미국 주가는 최고치 대비 88% 빠졌다. 현재 우리 주가는 1년 전 최고점 대비 원화로는 57% 하락했지만 달러로 따지면 74% 하락한 셈이다(지난달 최저 지수 930, 환율 1500원 기준). 여기에 10년간 유상증자와 신규 상장으로 증가한 150조 원을 제외하면 체감 주가는 IMF 외환위기 수준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가 부도 직전으로 몰린 상황에서 과거 사례로 미래를 견주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일지 모른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1주일 단위로 전망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급변하는 난리통에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이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의미가 있다. 최소한 비관론자들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도록 정부도 액션을 취해야 하고 투자가들도 위기 이후의 기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난세의 비관론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침은 경계해야 한다. 공자도 지나침은 모자란 것과 같다고 했다.
이상진 신영투자신탁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