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우혜]이젠 우리가 세계를 도울 때

  • 입력 2008년 11월 29일 03시 03분


경제가 어렵다고 도처에서 한숨이요 걱정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 같은 것을 또 겪는 게 아니냐고 사람마다 어둡게 수런거리는 요즘, 마냥 찌푸려지는 우울한 마음을 활짝 펴주는 밝은 소식을 만났다. 서울대에 유학하고 있는 파키스탄과 우크라이나 출신 학생 26명에게 서울대에서 특별장학금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두 나라는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대상국으로서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상태여서 해당 학생들의 기쁨이 매우 크다는 소식이다.

그들이 “죽어가는 환자에게 넣어주는 산소와 같다. 평생 감사할 것”이라는 격정적인 말로 고마움을 표시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최근 마음을 계속 조이며 얽어매고 있는 무겁고 질긴 끈 하나가 툭 끊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계속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마음을 먹는 한 더는 ‘어려운 경제’가 두렵지 않다는 흐뭇한 마음 때문이다.

물질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그런데 마음을 나누는 일은 우리가 역경에 처했을 때 오히려 더 빛나고 진실해진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것은 돈주머니를 꽁꽁 묶어 손에 쥐고 있을 때 더욱 두려워진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서로 함께 나눌 때 더는 장애가 아니다. 사실 ‘어려운 경제’를 걱정하다가도 문득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가 거룩한 가난, 곧 ‘성빈(聖貧) 사상’으로 모든 소유를 버리고 단벌옷만 입고도 참된 기쁨을 누리면서 한없는 봉사의 삶을 산 것을 생각하면 “이런 돈 걱정이 다 무엇인가” 하고 자신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유학생 감동시킨 서울대 장학금

1997년에 우리가 경제위기로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자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한국 유학생에게 특별장학금을 주었다. 돌아보면 그때 우리 유학생이 받은 것은 장학금만이 아니었다.

같은 인류로서의 따뜻한 마음과 연대를 참으로 복되게 누린 것이었다. 먼 유럽의 영국이라는 나라가 선한 인간의 얼굴과 체온을 지니고 우리들 마음속에 가까운 이웃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살아 있는 한 경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절대적 요건이 되지 못한다. 그저 상대적인 요건일 뿐이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성 프란체스코처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도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부유하게 살 수가 있다. 그런 반면에 마음이 소유에 대한 두려움으로 얽매여 있을 때는 많은 것을 갖고도 부족해서 오히려 더욱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기였던 1930년 6월에 발간된 ‘우라키’라는 제목의 잡지가 있다. 미국에 유학한 한국 유학생 총회에서 만든 잡지인데, 거기에 당시 ‘미국의 종교계’를 개관하는 기사가 실렸다.

피츠버그의 웨스턴 신학교에 재학 중인 유학생 송창근이 쓴 기사인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내가 미국 오기 전에는 선교사에게 대하여 그다지 착한 생각을 갖지 않았소. 미국 같은 나라는 황금국이니까, 돈 자랑 권력 자랑을 두루 하느라 선교사업을 하는 줄로 알았댔소. 그런데 4, 5년 전부터 미국에 와서 본즉, 선교사를 위해서 돈을 내는 사람은 거의가 가난한 교인들이요 결코 돈 많은 부자들이 아닌 것을 알았고, 외국선교사업은 결코 자선적 태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신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임무로 알고 하는 것을 알았소.”

그런 것을 보면서 조선에 와 있는 기독교 선교사와 그들이 벌이는 선교사업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신의 영광을 위해서 가난한 살림에서 떼어내어 외국선교기금에 헌금하는 모습을 알고 크게 감동한 것이다.

외국선교기금이 부자에게서 나왔건 가난한 사람에게서 나왔건 ‘돈’으로서 보자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의 눈으로 보자면 그렇지가 않다. 둘 사이에는 막심한 차이가 있다. 어려움 속에서 같이 나누는 연대에서 생기는 무형의 가치가 하늘에 닿는 것이다.

더 어려운 이웃나라 손잡아줘야

이른바 세계 경제 13위국이라고 하는 우리도 지금 경제사정이 크게 어렵다. 그러나 서울대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 나라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그것을 실천하는 힘이 있는 한, 우리는 더는 경제가 두렵고 어려운 답답한 나라가 아니다.

과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던 때 우리는 세계 각국의 도움과 격려로 일어섰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 때이다. 그 소중한 의무를 서울대가 아주 따듯한 모습으로 실천해서 정말 반갑다.

송우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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