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희]대학은 ‘기업형 인재’ 양성소 아니다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명문대 졸업생 A 씨는 지난해 신도 부러워한다는 공기업에 취직했다. 근무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일이 서투르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회사 업무에 대한 지식이 일천할 뿐만 아니라 인턴사원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직장생활을 경험해본 다른 동료에 비해 미숙하기 마련이지만 상사는 그런 A 씨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기안문서 작성에서 프레젠테이션 발표, 사무실 기계 사용에 이르기까지 일처리를 못한다며 걸핏하면 핀잔을 줄 뿐이다.

사회와 기업은 모든 대학 졸업생이 기안문서 작성법, 새로운 기계 작동방법, 원어민에 가까운 유창한 외국어 구사능력 등 회사 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고루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대학이 모든 걸 완성해 줄 순 없다. 대학은 기업의 산하기관이 아니라 학생이 교양과 전공과정을 이수하면서 자기 전공분야에 대한 능력 전반을 기르는 학문의 전당이다. 다양한 전공을 이수한 학생은 그만큼 다양한 능력과 배경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무수한 회사 곳곳에 딱 맞는 맞춤인재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언론에 보도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대졸 신입사원 채용 및 재교육비 현황’ 자료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점이 많다. 기업이 시행하는 신입사원 교육은 첫 업무교육이지 대학이 해야 했던 교육을 ‘재’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신입사원 채용 과정을 통해 자기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선발하고 그 외에 필요한 능력과 지식을 보충하는 일은 해당 기업의 몫이다. 많은 기업은 입사 지원자의 능력과 자질을 계량화해 꼼꼼히 평가하기보다 지원자의 전반적 능력이나 잠재력이라는 두루뭉술한 기준에 가중치를 둔다. 따라서 앞선 A 씨의 사례처럼 업무관련 분야 지식이 얕고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한 학생이 입사하게 된다. 당연히 신입사원 교육비가 많이 들기 마련이다. 채용시험에서 합숙과 심층 면접을 강화하고 지원자의 능력을 철저히 계량화해 정확한 지표로 평가했다면 차후 교육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학이 기업과 일부 여론의 요구처럼 기능인 양성에 치중한다면 대학이나 나라에 미래는 없다. 대학은 고등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특정 기술과 실용학문에 치중한 학교는 따로 있다. 대학마저 그리로 가버린다면 기초학문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얼마 전 일본이 노벨상 과학 부문에서 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을 때 국내 언론은 앞 다퉈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대학이 기업의 수요를 감안해 교육과정을 실용적 내용만으로 바꾸고 맞춤인재를 양산한다면 그런 기초학문은 고사하고 만다. 해마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인문학의 위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대학이 기업의 기안문서 작성법, 사무기계 작동법, 실용지식과 응용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된다면 누가 기초학문을 전공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노벨상을 꿈꾸게 될까.

이재희 경인교대 교수 영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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