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지형]로즈장학생과 글로벌 리더십

  • 입력 2008년 12월 2일 02시 51분


신학기가 시작되는 9월과 10월은 미국 공립 고등학교 여학생에게는 테니스 시즌이다.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엔 테니스장으로 달려간다. 매일 2시간씩 연습에 열중한다. 1주일에 적어도 2, 3회 다른 학교와 경기를 치르는데 4시간이 훌쩍 넘기 십상이다. 막상막하의 상대를 만나면 6시간도 순식간이다. 어웨이 경기의 경우에는 하루 수업을 완전히 제치고 왕복 네다섯 시간 걸리는 인접 도시에 가야 한다. 귀가시간이 오후 11시를 넘기는 경우도 왕왕 벌어진다.

美단체경기 강조하는 이유

이 여학생은 테니스 수상경력으로 대학에 진학하려는 체육특기생이 아니다. 속칭 일류대 혹은 아이비리그를 목표로 하는 평범한 고3 학생이다. 오후 11시 넘게 야간자습을 하거나 학원으로 가는 우리의 고3 학생과는 판이하다. 하지만 목표가 다른 것이 아니다. 좋아해서 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가장 큰 까닭은 물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교육철학은 ‘교육론’에서 존 로크가 설파하여 근대 사회에서 보편화되었으나 그 정신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철학은 개인의 건강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미국 대학은 테니스 축구 야구 등 단체 경기를 매우 중요시한다. 몇 년 전의 하버드대 입학사정 원칙에 따르면 입학 지원자가 단체 경기의 학교 대표선수라면 5등급 중 최고 등급, 후보 선수는 다음 등급으로 채점한다. 역사란 결국 집단 안에서 이뤄지며, 리더십이란 집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링컨의 행정부를 닮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라이벌들의 팀(Team of Rivals)’도 알고 보면, 이렇게 단체경기를 통해 어릴 때부터 길러졌던 리더십의 한 특징이다. 우리 편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갈등, 균열을 어떻게 조화시켜 하나의 힘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는 단체경기의 준비 과정과 실전 협력을 통해서 길러진다. 단체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적에게도 포용과 진지한 자세를 갖추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단체경기에서 생기는 경쟁의식은 헌신적인 사회봉사로 순화되고 공동의식으로 승화된다. 위에서 언급한 여학생의 경우다. 음악 콩쿠르에서 상을 휩쓰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실력으로 다른 학생과 함께 정기적으로 노인정을 찾아가 콘서트를 개최한다. 매주 2시간씩 불우한 학생을 위한 개인 카운슬링, 3주 이상의 국제여름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뿐 아니다. 참여하는 네 개의 동아리 중 ‘글로벌 포럼’에서는 글로벌 어젠다에 대해 매주 토론한다.

신뢰받는 인재 육성 체계를

사회 사정이 이러한데 미국의 일류 대학이 어떻게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이나 ACT의 성적순으로만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겠는가. 인재 양성은 학교나 교육과학기술부만의 몫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글로벌한 덕성과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갖춰야 한다. 과목별 우수상 등 상장을 남발하며 회장과 반장을 나눠 먹기식으로 운영하는 고등학교, 승부나 순위를 조작하거나 대회 규모를 부풀리고 난립하는 수상대회, 봉사자에게 형식적으로 일을 맡기고 확인도장을 찍어주는 기관, 과외활동의 증빙서류 내용을 불신하는 대학.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글로벌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

최근 발표된 ‘로즈장학생’의 자질(동아일보 11월 28일자 A14면)을 살펴보면 신뢰의 사회 속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성실하게 성장한 글로벌 리더의 자질을 접하게 된다. 우리의 자녀가 학업뿐 아니라 육체적 강인함과 투지, 포용과 전략, 특정 주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헌신적 봉사정신을 지속적으로 갖추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체계화되고 투명한 신뢰와 글로벌 인재 육성 체계를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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