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기오]교육개혁 첫걸음, 학교정보공시

  • 입력 2008년 12월 3일 02시 58분


한 해를 넘기기 전 한 달을 남겨 놓고 학교정보공시시스템이 열리게 되었다. 이번에 선보인 학교정보공시체제는 영국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공개의 깊이에서는 다소 얕은 것으로 보이나 더 많은 범위의 공개항목을 포괄한다. 초중등학교는 학교의 책무성 제고에, 대학은 학생의 학교선택권의 내실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학교는 정체를 좀처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제도의 탈을 벗고 과거 어느 때보다 학생과 학부모에 가까우며 책임 있는 공공기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학교정보공시제 실시는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보여주는 성과이기도 하다. 17대 국회에서 이주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원입법으로 2007년 학교정보공개특례법이 제정된 지 1년 반 남짓하여 정부에 의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1996년 제정한 공공기관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의 단순한 대국민 공개에 중점을 뒀다. 학교정보공개특례법은 이와 달리 교육 수요자의 판단과 선택의 토대가 될 실적 정보를 중심으로 만들어 더욱 큰 의미가 있으며 우리 교육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국회와 정부가 적절히 역할을 분담하여 새로운 정책을 주도하고 실천에 옮기는 흔치 않은 사례를 보인 셈이다.

학교정보공시제의 실시가 가져올 여러 가지 변화를 그려본다. 우선, 지난여름 처음 실시한 전국적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앞으로 학교정보공시를 통하여 공개됨으로써 기초학력 제고를 중심으로 학교와 교사의 사명과 책임, 학교 교육환경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이는 정보화시대에 정보의 확산이 가져오는 두드러진 효과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그동안 과도한 팽창과 그로 인한 거품의 기미가 있었던 고등교육 부문에서 대학의 내실화 노력이 경주될 것이다. 대학 응시자와 대학 재학생 등 교육 수요자의 생각과 판단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고객만족 지향의 수요자 중심 고등교육으로의 발전방향이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로 공시된 정보를 토대로 한국 교육에 관한 보다 실질적 구체적인 연구가 크게 늘어나고 지식이 크게 축적된다.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교육정책과 학교경영의 수준이 단계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학교정보공시제의 원활한 정착을 위하여 앞으로도 거쳐야 할 난관이 많다. 먼저 지난여름의 전국적 학업성취도 시험 결과가 학교별로 공시되는 과정에서 커다란 논쟁과 갈등이 예상된다. 기초학력수준과 그 이상, 그 이하의 3단계로 구분하여 학생의 학력수준을 공개해야 할 개별 학교와 교사는 가장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감수하고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진보를 위한 진정한 용기가 된다. 우리나라 45만 교육자의 건전한 판단과 용기를 믿는다.

또 다른 우려의 하나는 정보화사회에서 증대되는 투명성에의 요구와 지유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개인의 자율성 창의성 사이에 벌어질지 모르는 갈등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비밀, 영업의 비밀, 종교의 비밀 등 다양한 비밀의 보호 위에서 발전한다. 근대 사회학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게오르크 지멜이 강조했듯이 비밀의 보호야말로 민간의 자율과 창의의 근원적 토대이다. 정보화사회의 진전 과정에서 비밀의 보호에 취약점이 노출되고 있다.

교육은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사회 부문이라는 점에서 정보화 진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투명성에의 요구와 학생 또는 학교의 비밀과 자율성 창의성 간에 충돌이 생기기 쉽다. 몇 년 전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동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학교정보공시제 발전에 있어서도 이러한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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