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권이 우리 헌법에서 최고의 가치규범이라는 점은 학설과 판례상 다툼이 없다. 사람의 생명이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면 자유와 재산에 대한 법적인 보호는 무의미하다. 그런데 헌법으로 보호되는 인간생명은 자연현상으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법적 개념으로서의 생명이다. 법적 개념으로서의 생명은 자연과학적 개념으로서의 생명이나 의학적 개념으로서의 생명과 달라서 하나의 결정(decision)이지 인식(cognition)이 아니다.
자연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자연과학적 또는 의학적 인식은 법적 결정의 기초가 될 수는 있어도 인식 그 자체가 그대로 법적 개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권의 대상인 인간생명도 자연현상으로서의 생명을 바탕으로 법적인 관점에서 내용이 정해지는 법적 개념이다. 그래서 나라마다 인간 생명에 대한 법적 규율이 다르다. 생명의 시기(始期)와 종기(終期), 사형제도, 낙태문제, 태아의 법적 지위, 안락사에 관해 나라마다 다르게 다룬다.
찬반논란보다 개념 논의 중요
법적 개념으로서의 생명과 생명권의 본질적 요소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의 생명과 유리된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할 수 없다. 인간존엄성의 활력적인 기초인 생명이 부인되는 경우에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도 끝이 난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이유로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이 함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는 종교관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무의미한 생명, 인공생명, 무의미한 생명연장이라는 논리로 인간생명의 가치를 상대화한다든지, 인간생명과 삶의 질을 비교하려는 태도는 강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결코 인간생명을 희생시키는 정당화 사유가 될 수 없다. 존엄사라는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하면서 인간의 존엄성 보장에 관한 헌법조문을 근거로 제시한 점도 잘못이다.
존엄사를 둘러싼 최근 논란의 핵심은 존엄사의 문제가 아니라 소극적 안락사의 허용 여부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적극적 안락사와 달리 소극적 안락사는 논의의 역사가 길고 생명에 대한 법적 인식에 따라서는 허용하려는 경향이 감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지금처럼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의에서 성급하게 허용 여부의 결론에만 매달리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는 토론문화의 결핍 내지 빈곤으로 어떤 문제든지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진지한 토론 내지 절차와 과정에 대한 성찰을 소홀히 한 채 너무 쉽게 즉흥적인 결론을 말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극적 안락사의 허용 여부도 허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논란보다는 어떤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누가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인간 생명의 본질인 인간존엄성을 가장 존중하는 길인가에 관한 논의가 앞서야 한다. 그것이 소극적 안락사의 핵심 쟁점이다. 또 소극적 안락사의 허용에 앞서 소극적 안락사를 줄일 수 있는 국가적인 호스피스제도 내지 의료복지의 확충과 소극적 안락사의 악용 또는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효율적 대책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안락사 악용-남용 어떻게 막을까
이런 중요한 절차적인 논의를 생략한 채 전개되는 소극적 안락사의 허용 여부 논란은 매우 위험한 데다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기 어렵다. 모든 법적인 문제에 대한 결정이 늘 그렇듯이 결론의 타당성은 찬반의 숫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설득력에서 나온다. 설득력 있는 논리는 결론 도출까지의 절차와 과정상의 진지한 토론으로 형성된다.
법원의 긍정적인 판결로 점화된 소극적 안락사의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한 사회적 공론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국회에서 법적으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 이 문제는 언제까지나 개별 법원의 재판에 맡겨 둘 성질의 것도 아니고 일과성 사회적 논의로 끝날 일도 아니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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