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갑부가 시사주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쏟아낸 ‘고해성사’다.
이처럼 미국발 경제위기는 부자 중의 부자, 이른바 ‘슈퍼 리치(super rich)’에게도 심리적 타격을 주고 있다. 고가의 명품 소비에 대한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럭셔리 셰임(luxury shame)’이 미국을 강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절엔 “럭셔리의 반대말은 가난이 아닌 천박함”이라며 ‘당당한 소비’를 강조했던 코코 샤넬의 말도 빛을 잃는 듯하다. 이제는 부를 과시하는 듯한 럭셔리 소비는 천박함으로 비칠 수 있다.
지난달 경영난에 허덕이던 미국의 자동차 ‘빅3’ 최고경영자가 일반 항공료의 40배에 육박하는 호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워싱턴 의회에 모습을 나타내 거센 질타를 받았던 일화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럭셔리 브랜드도 이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명품 보석업체 미키모토는 한눈에 봐도 고가인 화려함 대신 수수한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는가 하면, 초대받은 멤버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쇼핑할 수 있는 온라인 명품 사이트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 해외 명품 브랜드의 한국지사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야 골치를 앓고 있지만 한국 내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고 전했다. 희소성 덕분에 오래 지닐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명품 보석들을 사뒀다가 되파는 ‘명품테크’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생겨난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해 ‘생각 없는 부유층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것은 단편적인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황기에 불우이웃을 돕는 손길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어린이와 아동보호기관을 지원하는 한국어린이재단이 올해 10월까지 모은 후원금은 21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나 감소했다고 한다.
자선 활동으로 유명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나누어 주는 방법과 기술도 창안해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올해도 미국 최고 ‘기부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낸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제2, 제3의 카네기가 속속 생겨난다면 ‘럭셔리 셰임’이란 말이 나올 리도 없을 것이다.
김정안 국제부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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