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규덕]정부, 대북정책 비전 보여라

  • 입력 2008년 12월 4일 02시 56분


북한이 12월 1일자로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남측 요원의 철수와 남북철도의 운행 중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왜 북한이 12월 초하루를 시점으로 잡았는지, 왜 개성공단의 완전한 폐쇄와 같은 더 강경한 수를 쓰지 않았는지를 주목하면 매우 흥미롭다.

대북 전단(삐라) 살포로 빚어진 문제인데 남쪽에서는 보수단체와 진보단체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무대응, 전략인가 역량부족인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면 단 1분 1초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행여 경제 현안에 묻혀 북한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한미 전략동맹을 아무리 강화한다고 해도 북한 문제를 결코 우회할 수 없다는 점과 마음만 먹으면 한국의 정치 상황 정도는 언제든지 불안하게 만들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정부가 보여 준 무덤덤한 대응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무대응도 사실상 전략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치밀하게 준비된 ‘선의의 무관심’ 정책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역량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보세력은 이명박 정부의 강경 자세가 남북관계의 파국을 불러왔다고 국내는 물론 국제회의에 다니면서까지 연일 나팔을 불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반박하거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오해가 있다고 해명하는 사람조차 이제는 찾기 어렵다.

정부의 주무부서 책임자나 국책연구소의 연구원마저 정부 정책이 갈팡질팡한다는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한다면 국민의 혼선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실종됐다는 얘기가 항간에 나돈 지는 이미 수개월이 지났지만 외교안보 정책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걱정하는 사람은 점차 줄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하루하루 당장 눈앞의 불을 끄기에 급급하다 보면 결코 자신의 길을 곧게 갈 수 없음은 자명하다. 북한이 내던지는 잔펀치에 기둥뿌리가 무너질 수 있다.

대통령이 제시했던 ‘비핵개방 3000구상’은 분명 좋은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삼겹살을 연상하듯 ‘비개삼’이라고 부르며 정부 정책을 조소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구상은 비핵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아니라, 북한 재건에 국제사회를 동참시키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만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5개의 실천분야에 따라 구체적인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이를 지원할 ‘신한반도 구상’을 함께 갖고 출발했음을 정부의 어느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그저 공매를 맞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필요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제사회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북한 재건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일이다. 관련 당사국이 북한 재건에 동참하도록 걱정거리를 미리 없애는 일이다. 두 번째는 북한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질 때를 대비해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관심과 시야를 한반도에 더는 매몰시켜선 안 된다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탄생했다. 세계를 무대로 삼고 뛰어야만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과 함께 협력할 새로운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글로벌 코리아는 선거 캠페인용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특유의 돌파-추진력 발휘하기를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한국의 국제적 역할을 꿈꾸는 국내외 모든 이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대북문제에 있어서도, 또한 세계로 향한 도전에 있어서도 그들은 우리가 왜 주저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특유의 돌파력과 추진력을 발휘하기를 원하는 이가 여전히 많이 있다. 누가 치즈를 옮겼는가? 한때 가장 유행했던 교양서적의 제목이지만 요즘 들어 부쩍 의문이 간다. 과연 누가 그의 생각을 옮긴 것일까?

홍규덕 숙명여대 사회과학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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