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얼빠진 한나라당

  • 입력 2008년 12월 4일 02시 56분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9월 당 동료의원 30명의 서명을 받아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민단체의 구성원이 최근 3년간 불법폭력집회로 형을 선고받은 경우 정부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지급된 보조금도 환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같은 당 한선교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소속 74개 단체가 공익사업 목적으로 올해 8억 원의 보조금을 배당받았다’는 보도를 보고 “불법, 폭력, 반정부 시위에 국민 세금을 지원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화를 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무렵이었다. 당 지도부도 불법폭력시위 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을 규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신, 한 두 의원의 개정안은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이광재·민주당)에 상정되자마자 폐기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까지 법리(法理)상의 문제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광우병 사태 이후 국민의 혈세가 불법폭력시위 단체에까지 지원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법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폐기됐으니 집권 여당의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게다가 심사 과정에서 법 개정의 당위성에 대한 최소한의 견해 표명도 없었다. 특히 강길부 의원은 법안 발의자 중 한 사람이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 곳곳에선 크고 작은 불법폭력시위가 거의 매일 계속되고 있지만 주도 세력은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그들이 버젓이 정부의 보조금까지 받아가며 법치(法治)를 비웃고 사회를 분열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 고리를 차단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문제의 법안이 여야 간 다툼이 예상되는 이른바 ‘쟁점 법안’이라 뒤로 미룬 듯하다. 그렇다면 신, 한 두 의원에게도 법안 상정을 서두르는 대신 좀 더 충실하고, 법리상 하자가 없는 안(案)을 만들라고 충고했어야 했다. 그런 게 여당 지도부의 역할이고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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