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아이오와 코커스 승리에서부터 2일 주지사 회의 연설까지…. 그가 연출해 온 드라마의 장면마다 서울에서의 기억의 편린(片鱗)이 겹쳐 떠오르곤 했다.
▽닮았다!=올해 2월 메릴랜드 주의 유세장. 시작 세 시간 전인데도 줄이 수 km나 늘어서 있었다. 칼바람이 부는 영하 7도의 추위 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이 훗날 역사가들이 중요한 전환기로 기록할, 역사의 새로운 장(章)이 열리는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1987년 6월 중순, 서울 하늘에 하얗게 쏟아지던 ‘함박눈’을 보면서도 그런 예감이 들었다. 초여름의 때 아닌 그 하얀 눈은 최루탄 연기 자욱한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에게 인근 고층 빌딩의 직장인들이 눈물, 콧물을 닦으라며 던져주는 티슈 뭉치였다.
▽닮았다!=9월 중순 터진 금융위기는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환란이 김대중 후보를 당선의 벽 위로 끌어올렸듯, 흑인 대통령 탄생이 현실로 성큼 다가선 느낌이었다.
▽닮았다!=가을이 되니 ‘Change(변화)’란 글자가 거리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집 마당 푯말, 자동차 범퍼, 티셔츠 등 도처에 ‘Change’였다. 현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변화’란 어젠다가 일으키는 돌풍은 2002년 한국을 떠올리게 했다.
▽닮았다!=“공화당원인 내가 오바마를 찍은 건 알량한 이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려 한 체니(부통령) 같은 부류에 염증을 느껴서다.”
11월 4일 새벽 버지니아 주 투표소에서 만난 50대 신사의 말이다. 방향은 네오콘(신보수주의)과 정반대지만 속성과 행태는 너무도 닮았던 노무현 정권의 이념세력들이 2007년 12월 된서리를 맞은 게 떠올랐다.
▼다르구나…=오바마란 이름조차 생소하던 지난해 봄, 한 싱크탱크 연구원이 이런 말을 했다.
“여러 대선 예비주자를 만나봤는데 오바마가 눈에 띄더라. 적확(的確)한 어휘를 신중하게 전달한다. ‘참 오래 생각해서 나온 말이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 후 지켜본 오바마는 정말 그랬다. 말을 쉽게 내뱉지 않았다.
1일 회견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 배경을 설명하면서도 그는 ‘초당파적 결정’ ‘끌어안기’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가치와 비전을 공유한다. 그의 능력은 미국에 절대 필요하다”고만 거듭 강조했다.
이날 두 사람은 두터운 신뢰를 과시했다. 일단 경쟁이 끝나면 깨끗이 협력하는 ‘덜 감정적인 사회’의 단면이었다.
▼다르구나…=오바마 당선 후 두 딸을 공립학교에 보낼지, 사립학교에 보낼지를 놓고 CNN이 e메일로 시청자 의견을 받았다. “오바마는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해 왔다. 대통령이 아닌 오로지 부모의 관점에서 어떤 게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선택인지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닮았나?=일부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가 ‘노무현과 오바마의 공통점’을 강조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오바마 캠프 300인 자문그룹 멤버였던 한 지한파 인사와 지난주 점심을 먹다가 의견을 물었다. 그의 대답을 가감 없이 전한다.
“어이없다(ridiculous). 세 가지 이유만 들겠다. 첫째, 오바마는 말을 아끼고 신중하게 한다. 둘째, 인종적으로는 소수계지만 미국 사회가 제공하는 최고의 교육 혜택을 누렸다. 셋째, 이념 지향적이지 않다. 그의 정치인생 시발점인 커뮤니티 운동은 한국의 재야활동과 달리 이념적인 게 아니었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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