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 습작 시절, 나는 존 그리샴과 마이클 크라이튼을 통해 소설 쓰는 법을 배웠다. 존 그리샴의 소설이 탄탄한 구성과 날렵한 사건 전개로 독자를 끌어당긴다면,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은 탁월한 기획과 엉뚱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로 빛났다. 풍부한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방법을 ‘쥬라기 공원’과 ‘먹이’ ‘공포의 제국’을 통해 거듭거듭 배웠다.
‘먹이’는 나노과학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밝힌 수작이다. 그가 이 작품을 발표한 2002년 즈음엔 나 역시 나노과학에 관한 자료를 모으던 중이었다. 그러나 ‘먹이’를 읽은 후 방대한 참고자료와 매력적인 이야기에 압도되어 집필 계획을 접었다. 소설을 통해 역사와 과학의 만남을 구체적으로 시도한 이도 바로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내가 계속 과학소설 언저리를 서성거리는 이유도 마이클 크라이튼이 심어준 테크노스릴러의 매력 때문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이청준-랜디 포시
다음으로 소설가 이청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최인훈의 ‘광장’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다. 두 작품은 소설이 서푼어치 이야기 ‘나부랭이’가 아님을 단숨에 보여주었다. ‘비화밀교’에서, 그는 춥고 배고픈 ‘겨울공화국’에서 희망의 불꽃을 은밀히 그리고 아름답게 피울 방편이 곧 소설임을 증명했다. 글만 잘 쓰는 이야기 기술자가 아니라 참된 지식인으로 사는 법이 작품 곳곳에 담겼다. 시대의 아픔과 꿈을 반성과 성찰을 통해 글로 드러내는 것이 인텔리겐치아라면 그는 참으로 성실하고 치열한 인텔리겐치아였다. 경제 위기로 모든 것이 휘청대는 2008년, 어떻게 우리는 이 고통을 보듬고 미래를 준비할까. 그를 추궁하고 종주먹을 들이대던 인물들이 소설로 세상에 나왔다면? 상상이 간절할수록 아쉬움이 크다.
마지막으로 카네기멜런대 랜디 포시 교수. 나는 유튜브를 통해 그의 ‘마지막 강의’를 접하고 책도 읽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정직했다. 절망과 좌절, 나아가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하나뿐인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지금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쳤다면 앞으로는 변화하고 발전할 일만 남았다고 용기를 준다.
강의의 백미는 그의 인생에 가장 완강하고 아름다웠던, 그를 눈물로 부서지게 했고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 167cm 장벽 이야기다. 장벽은 바로 재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녀는 머뭇거리고 망설이다가 끝내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요”라고 이별을 통보했다. 그 순간 체념하고 돌아섰다면 재이를 아내로 맞이하는 행운은 없었으리라. 상처받은 후에도 그는 재이를 따듯하게 감싸며 기다렸다. 그리고 끝내 그녀와 결혼했다. 랜디 포시는 주장한다.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지요.” 죽음은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장벽이었고, 그는 이 거대한 장벽마저도 삶을 반성하고 이루는 도구로 삼았다.
각자 간직한 스승들에게 배우길
심수봉의 절창 ‘비나리’에 ‘우리 사랑 연습도 없이 벌써 무대로 올려졌네’란 구절이 나오지만, 사랑만 연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마찬가지다. 이 되돌릴 수 없는, 갑작스러운 단절은, 아득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집을 해설하는 자리에서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그의 사진을 보거나, 그의 초상을 보고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무서워라, 그때에 그는 정말로 없음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적었다.
나는 내 삶을 흔든 세 분 스승을 결코 ‘없음의 세계’로 서둘러 보내드리고 싶지 않다. 한 문장이라도 한 단어라도 더 매달려 깨치고 싶다. 12월 이 아침, 각자 간직한 ‘내 마음의 스승들’을 기억하며 침묵으로 배우기를 권해드린다.
김탁환 소설가·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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