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심스러운 예의주시는 중국이라는 또 다른 ‘보편제국’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중화주의 역시 문명의 보편적 표준을 지향한다. 톈안먼(天安門)에 ‘중화인민공화국만세’와 함께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는 구호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반드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유산만은 아니다. 톈안먼 광장이 세계문명의 중심이라는 중화의식을 빼놓고는 그 공간을 그득 메운 메갈로마니아를 설명하기 어렵다.
1978년 12월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제11기 3중전회)에서 처음 선포된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이 18일로 30주년을 맞는다. 이에 맞춰 중국이란 보편제국 역시 미국에 버금가는 거대한 항로 수정을 모색하고 있다. 쉬 드러내 놓고 말하진 않아도 다음 30년을 대비하는 데 있어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역시 민주주의다.
대전환 준비하는 美-中의 고민
개혁·개방 2기에도 민주주의 없는 ‘붉은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하리라 장담하기는 힘들다. 민주화를 피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를 어떤 형용사로 수식할지 미리부터 궁리하는 편이 실용적이다. 그런 심모원려가 작년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회의를 앞두고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전유물이 아니며…중국도 하루빨리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말한 배후에 깔려 있다. ‘제3차 사상해방운동’의 그 화두는 올해에도 이어져 9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핵심 브레인으로 알려진 리쥔루(李君如) 중앙당교 부교장이 “이제는 정치개혁 없이 경제개혁은 없다”고 못 박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통제 가능한 민주화의 길, ‘중화의 얼굴을 한 민주주의’가 개혁·개방 2기의 최대 고민거리로 부상한 것이다.
때마침 이 간접화법의 속내를 직접 엿볼 기회가 생겼다. 제17기 3중전회 직후인 10월 말, 베이징(北京)대와 칭화(淸華)대에서 만난 학자 사이에는 민주주의의 중화적 얼굴을 놓고 백가쟁명이 한창이었다. 허나 ‘정치적 유교주의’부터 유사 ‘사회민주주의’에 이르는 온갖 주장을 관통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서구문명이 보편적 표준으로 제시한 일인일표 민주주의가 중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중화 민주주의는 서구 민주주의의 토착변종이 아닌 대안적 문명표준이어야 한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논의의 눈높이는 범속한 사회과학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하물며 이번 제17기 3중전회 때 발표된 삼농(三農)정책의 정치적 의미를 평하면서도 끊임없이 베버의 국가론이나 롤스의 정의론을 인용하고 있었다. 서구 민주주의를 수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안적 보편을 제시하기 위해 문명의 뿌리부터 해체하려는 당찬 야심이 꿈틀대고 있었다. 어쩌면 중국과 같은 거대 보편제국의 항로 변경은 문명사적 성찰을 피해갈 수 없다는 현실인식의 소산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대전환을 준비하는 그 굽이굽이 깊은 속의 일단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韓,더 높고 멀리보는 국가전략을
2008년 12월, 두 보편제국이 기로에 서 있다. 신자유주의 30년, 개혁·개방 1기 30년을 뒤로 하고 하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찾아, 또 하나는 ‘중화의 얼굴을 한 민주주의’를 찾아 미지의 항로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부터 펼쳐질 역사적인 대항해가 순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두 항적(航跡)이 몰고 올 거친 삼각파도 사이를 헤집고 나가야 하는 우리에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이 높이 날아 멀리 봐야 한다. 지금은 관시(關係)와 인맥을 찾아 베이징과 워싱턴을 헤매고 다닐 때가 아니다. 그네들의 문명사적 성찰에 동참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는 올라서야 한다. 그 고소(高所)에 우리 시대의 ‘실용외교’가 실용주의로는 안 되는 이유, 세계사적 전환기가 새로이 요구하는 흑묘백묘(黑猫白猫)의 지혜가 있다.
김성호 연세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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