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문화예술 지원금 배분은 30년 넘게 문예진흥원을 통해 관 주도로 이뤄져 왔다. 지난 정부는 이 시스템을 확 바꿨다. 문화예술위를 신설해 예술인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스스로 지원 대상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일각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논의를 주도했던 좌파 예술인들이 기세등등할 때여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예술인들이 직접 판단한다는 ‘이론’은 그럴 듯해 보였으나 바로 그 안에 함정이 있었다.
▷실제로 위원회 운영을 해 보니 위원들은 자신이 속한 예술 장르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급급했다. 서로 ‘주인 없는 돈’을 챙기려고 해 갈등이 속출했다. 노무현 정부는 좌파 성향의 위원을 많이 임명해 ‘편중 지원’이 도마에 올랐다. 유망하고 실력 있는 예술가를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지원한다는 기금의 존재 목적은 간데온데없이 사라졌다. 누가 파워를 갖고 있느냐로 지원 대상이 결정됐다. 결실을 기대하기 힘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기금 운용을 잘 모르는 예술인들이 위원회 책임을 맡은 뒤 기금통장의 잔액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05년 4880억 원이었던 기금은 2006년 4580억 원, 2007년 4271억 원으로 급감했다. 이대로 가면 10년 후 기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한다. 해임된 김정헌 위원장은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54억 원을 날려버렸다. 최대 피해자는 예술인들이다.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어느 곳보다 먼저 한파가 들이닥치는 곳이 문화계이다. 사람들이 문화비 지출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믿는 구석이 문화예술위인데 이마저 결딴나면 이 겨울을 어떻게 버틸까. 예술인들은 침울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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