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은 이날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지금쯤 국민한테 사과를 해야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여기서 사과를 해버리면 피의 사실을 인정해 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어 모든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는 형님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동안 가족 문제에 관해선 유난히 감상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그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때 장인의 좌익 활동 경력이 문제되자 “그러면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고 반박한 일이 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사상 검증 요구에 응하면 될 일이었지만 묘한 논리로 피해 나갔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대선 직후인 12월 말 민주당 당직자 연수회에서 “청탁을 하다 걸리면 밑져야 본전이 아니고 패가망신(敗家亡身)하게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후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노건평 씨에게 청탁한 일이 드러났을 때 야당들은 “형부터 패가망신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힘없는 시골 사람을 괴롭힌다”며 형을 두둔했다.
국민은 노 전 대통령의 ‘유별난 가족애’에는 관심이 없다. 누구도 노 전 대통령에게 ‘동생의 도리를 저버리라’거나, ‘아내를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이번에 평범한 자연인 노 아무개 씨의 형이 부정에 연루된 것이라면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노건평 씨가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현직 대통령의 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이권에 개입했다는 점이다. 노 씨도 자신의 혐의를 일부 시인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이 집안 단속을 못한 것을 자책하기는커녕 ‘동생으로서의 도리’ 운운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공인으로서 형의 문제로 사회적 물의가 빚어진 것에 대해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옳다. ‘동생의 도리’를 하겠다고 국민 앞에 변명만 늘어놓는 것은 공(公)과 사(私) 모두에서 모범이 돼야 할 전직 대통령의 태도가 아니다. 더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박정훈 정치부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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