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재기]생활속에 도사린 방사선 위험

  • 입력 2008년 12월 8일 03시 03분


화원을 운영하는 A 씨는 서울 근교 전원주택에 산다. 그는 온열세라믹 침대를 사용하는데 실내 공기에 있는 천연방사성 핵종인 라돈의 증가에 의해 1년에 5mSv(밀리시버트·피폭방사선 단위·일반인은 라돈에 의해 보통 1mSv 피폭), 침대 석판으로부터 1mSv 정도의 방사선에 노출됐음을 알게 됐다. 항공승무원 B 씨는 연간 800시간 정도 탑승하는데 이로 인해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을 연간 4mSv 정도 받는다.

대구의 C 씨는 허리통증 때문에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는데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병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니 허리 촬영 때 환자가 받는 방사선량이 보통 5mSv인데 C 씨가 촬영한 병원에서는 9mSv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리 원전에 근무하고 있는 D 씨는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면서 연평균 약 2mSv를 받는다. 원전 종사자 중에서 방사선을 많이 받는 편에 속한다.

정리하면 일반인 A 씨는 자기 집에서 6mSv를, 항공승무원인 B 씨는 직업으로 인해 4mSv를, CT 진단을 받은 C 씨는 1회 CT에서 다른 병원에 갔더라면 받지 않아도 될 4mSv를 받았다. 반면 가장 방사선을 많이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원자력발전소의 D 씨는 직장에서 2mSv를 받았다.

매우 가치 있게 이용되는 방사선이지만 암을 증가시키는 등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원자력 방사선은 원자력법규에 의거해 매우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런데 위의 예에서 보듯이 원전 종사자보다 더 많은 방사선을 집에서, 병원에서, 또는 방사선과 관계없어 보이는 직장에서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국민이 받는 방사선량의 80% 정도는 천연으로 존재하는 자연방사선에 의한 것이다. 나머지 20%는 거의 전부가 검진 과정에서 환자가 받는 의료 피폭이다. 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의료 피폭 비중은 더 증가한다. 원전이나 산업체, 의료기관 직원이 받는 직무 피폭량은 전체의 1% 미만이다.

질병의 진료를 위한 의료방사선은 필요하다면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에서 보듯이 필요 이상의 방사선을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방사선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진단에 방사선을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금까지 방사선 안전규제는 피폭량이 미미한 원자력 이용자를 엄격하게 규제한 반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환자 피폭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규제를, 압도적으로 많은 자연방사선에 대해서는 거의 규제를 하지 않았다. 환자가 받는 의료피폭이나 국민 누구나 받는 자연방사선은 원자력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천이 무엇이든 방사선 피폭은 같은 방사선 피폭이므로 일정 수준 이상에 대해서는 필요한 안전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원자력법의 범위 밖이라는 이유로, 또는 의료라는 이유로 안전에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자연방사선이더라도 피폭량이 많은 대상에는 안전에 필요한 규제를 도입하기 위한 법규와 기준을 준비하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방향이다. 욕심을 더한다면 관련 법규를 정비 보완하는 김에 일부 어색한 안전규제 행정체계도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진단 X선은 환자 피폭이나 종사자 피폭 모두를 의료법규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관리하고, 치료용 방사선발생장치와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치료를 위한 방사선 안전은 원자력법규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데 부분적으로 부처 기능과 어울리지 않는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종사자 피폭관리가 이원화되는 문제가 있다. 방사선 종류와 관계없이 진단 및 치료를 위한 환자 피폭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종사자 피폭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재기 한양대 교수 대한방사선방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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