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겹만 걷어도 아직 기름덩어리
5월, 나는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는 산문집 출간을 앞두고 태안반도 때문에 꽤 오래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거의 내 일상의 영역처럼 친숙해진 태안반도를 책의 내용으로 수록하고 싶었지만 원유 유출 사고로 중병을 앓는 그곳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 선뜻 예전 모습에 대한 찬양을 일삼을 수 없어서다.
하지만 나는 결국 태안반도를 책에 수록하고 내가 찍은 과거의 사진도 수록했다.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예전의 아름다움을 더욱 자극하고 현실적인 관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에서였다. 책을 출간한 뒤에는 다시 한 번 태안반도를 찾아갔다. 그 무렵 태안반도에서는 백합과 육쪽마늘 축제가 열렸지만 숱한 안내 표지와 현수막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어시장도 파시의 분위기가 역력하고 식당이나 상가에서는 깊은 정적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돌아와서 나는 ‘태안반도가 부른다’는 칼럼을 신문에 게재했다. 그리고 태안반도에 대한 국민의 열렬하던 관심이 단 6개월 만에 헤식어버렸음을 안타까워했다. 7월에 대부분의 해수욕장이 개장되고 9월에 어민의 조업이 재개됐지만 많은 주민은 생계가 아니라 생존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지리멸렬한 보상과정, 흉흉해지는 민심, 그리고 국민적 무관심까지 가세하니 아무도 문병하러 오지 않는 오래된 중병환자와 태안반도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우리가 그토록 끔찍스러워하며 ‘검은 재앙’이라고 부르던 일이 있은 지 이제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가 치유되려면 20년 이상이 걸린다는데, 그런데도 단 1년 만에 모든 것이 원상 복구된 듯이 과장된 보도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접했다. 포클레인으로 한 겹만 걷어내면 아직도 기름덩어리가 드러나는데 만리포해수욕장의 고운 모래와 신두리 앞바다의 쪽빛 물결을 앞세우며 검은 기름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는 저의는 과연 무엇일까.
태안반도를 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태안반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십 종의 어류가 사라지고 생태계의 먹이사슬 체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됐는데 그것은 덮어놓고 눈에 보이는 경치만 말끔하다고 과장한다면 치유가 아니라 더욱 깊은 중병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오염된 환경에서 오히려 번식력이 강한 종만 늘어나는 생태계의 현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는가.
우리의 진실과 진심이 부족한가
현재 태안반도는 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서 묘한 이중적 대접을 받고 있다. 태안반도에 기울였던 초기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표면상의 당위와 실제적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현실 사이에 태안반도가 걸려 있다. 입으로는 관심을 가진다고 하면서도 몸은 점점 멀어지는 형국이다.
이와 같은 이중적 태도의 선봉에 정부가 서 있다는 건 심히 유감스럽고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태안반도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낡고 타성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마도 우리의 진실과 진심이 부족한 때문일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를 품어준 반도, 이제는 우리가 품어야 옳지 않겠나.
박상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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