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정서 탈퇴와 빅3
취임 직후인 2001년 3월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것이 그것이다. 설마 했던 세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가 발효되기 위해서는 55개국 이상의 비준을 받고 감축 의무를 부담하는 국가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50%를 넘어야 했다. 미국 배출량이 25%로 세계 1위였기 때문에 미국의 빈 자리를 다른 나라들이 메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러시아가 비준서를 기탁함으로써 교토의정서는 2005년 2월 가까스로 발효됐다.
부시 대통령은 올해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교토의정서는 참 나쁜 협정”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온실가스 강제 감축에 부정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 발언에는 대꾸를 안 했다던가.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지 7년 반이 지났다. 지금에 와서야 교토의정서 거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임이 드러나고 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가 좋은 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연료소비효율이 나쁜 미국 자동차는 시장에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빅3는 연료소비효율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최소연비법안의 의회 통과를 막는 데 골몰했다. 그사이 하이브리드차 등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중소형차를 개발한 일본은 미국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정부가 위기(온실가스의 심각성)를 인정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느냐, 회피했느냐의 차이는 이렇게 컸던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빅3에 대해 구제금융 지원을 촉구하고 부시 정부가 이에 반대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부시는 미국 자동차산업이 망가지도록 여태껏 뭘 하다가 이제 와서 구제금융을 막느냐는 볼멘소리들이 튀어나온다.
대통령이 개별 기업의 성패까지 어떻게 책임지느냐고? 그렇지 않다.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퇴직사원들에게까지 건강보험 혜택을 준다. 빅3가 연금과 건강보험을 대신 내줘야 하는 퇴직자와 그 가족 수는 78만 명, 여기에 들어가는 건강보험료 부담액은 작년 한 해에만 46억 달러(약 6조7900억 원)에 달했다. 개별 기업이 퇴직사원의 건강보험까지 책임져야 되는 것은 전국민 건강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판단 잘해야 기업도 산다
미국 정부가 진즉 의료개혁에 나섰더라면 기업이 나라를 대신해 근로자의 복지를 떠맡아 부실을 초래하는 오늘의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는 이런 변화의 욕구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대선 유세 때마다 난소암에 걸려 세상을 뜬 자신의 어머니가 불충분한 보험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고 말해왔다. 오바마의 멘터인 톰 대슐 상원의원이 차기 보건부장관으로 지목되면서 미국에서도 건강보험 법안 통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우리보다 한참 늦었다.
오바마의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는 차기 행정부 정책제안서에 한국인의 높은 학업성취도에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지만 나는 ‘오바마의 미국’에 한국의 건강보험을 벤치마킹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 건강보험도 완벽하진 않지만 이만한 제도도 드물다.
새삼스럽게 건강보험을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도 부시의 실수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정부와 기업은 존재 목적이 다르다. 하지만 위기 때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못 하면 기업도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부시 정부의 교훈을 우리 정부도 새겼으면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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