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상인]참 나쁜 反美

  • 입력 2008년 12월 10일 02시 59분


“우리 매장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절대 판매하지 않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100% 한우만 사용합니다.” “저희 레스토랑에서는 호주산 쇠고기만 취급합니다.” 지난봄 촛불시위 이후 우리나라 식당가의 벽면이나 메뉴판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문구다. 핵심은 결코 미국에서 온 쇠고기가 아니니 광우병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고 들라는 뜻이다.

이런 문구들만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파는 곳도 없고 사먹을 곳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미국 농무부 통계를 보면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 이미 9월 금액 기준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최대 수출시장이 되어 8924만 달러어치를 수입했고, 물량 기준으로는 1만6642t을 수입하여 멕시코 다음으로 미국의 두 번째 쇠고기 수출시장이 되었다. 그런데 겨우 11월 하순에서야 미국산 쇠고기를 드러내놓고 판매하는 할인마트들이 나타났으니, 그동안 그렇게 많이 들어온 ‘미친 소’는 모두 어디로 갔고 누가 다 먹었을까.

더 신기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그토록 대량으로 국내에 수입되는 동안 인간광우병 감염을 우려해 검사를 받은 사람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의 보고다. 뇌에 구멍이 송송 뚫려 죽는 사람이 속출할 판인데 어찌 다들 이처럼 태연하고 의연할 수 있을까. 일반 국민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이나 ‘만나면 좋은 친구’를 자칭하는 공영방송까지 이렇게 무심할 수는 없다. 또한 당시 촛불시위에 동참했던 야당의 명분이 국민 건강권이었다면 지금은 만사를 제치고 인간광우병 검진 의무화를 위한 법률 제정에 나서야 할 때다. 그래야 앞뒤가 맞지 않겠는가.

반대하던 美쇠고기 왜 다 팔렸나

이처럼 유치한 반미(反美) 해프닝은 사실상 처음이 아니다. 가령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만 해도 그렇다. 가장 문제가 많아 보이는 금성출판사 것의 경우,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광복 직후 남북한에 각각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은 ‘점령군’과 ‘해방군’으로 대비되고 있다. 참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번 양보하여 만약 이념적 성향이 다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치자.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눈에 콩깍지가 끼어도 유분수지 미국 제국주의와 프랑스 제국주의를 구분하는 대목은 참으로 악의적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함이 들어온 길은 ‘진로’로,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함대의 경우는 ‘침입로’로 차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우리나라 쪽을 향해 프랑스는 앞으로 나아갔고 미국은 침범해 들어갔다는 얘기인데, 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지만 제국주의 이론과 역사를 새로 써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런 교과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쪽이 불과 몇 년 전 교육부였고 그 당시 집권 여당이었으며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 역사학계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역사교과서 문제는 사실상 뿌리가 같은 것이다. 이미 교실에서 ‘나쁜 미국’을 배우고 익힌 마당에 텔레비전에서 광우병 걸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하니 어찌 아이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학습된 반미’가 교실에서 체계적으로 배양되고 있으니 내용이 아무리 과장, 왜곡, 허위 일색이라도 일단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마치 마른 장작에 불이 옮아붙듯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를 ‘직접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로 미화하는 어른까지 있으니 아이들의 어깨 또한 으쓱해질 수밖에 없다.

反美자유 있지만 선동권리 없어

미국은 천국도, 유토피아도 아니다. 미국이 곧 인류의 미래도 아니며 한국의 모든 희망 또한 아니다. 많은 장점이 있긴 하지만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등의 측면에서는 태생적인 한계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 만큼 필요하다면 친미(親美)와 마찬가지로 반미사상이나 반미운동 자체는 있을 수 있다. 한미관계 또한 영원무궁 절대 성역은 아니다. 하지만 반미에 힘이 실리고 한미관계가 달라지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시작은 진실, 그리고 끝은 정직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반미를 주장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선동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특히 교육 영역이 그렇고 언론 분야가 그렇다. 대한민국에 독(毒)이 되는 가짜 반미는 많아도 약(藥)이 될 진짜 반미는 여전히 드물고 귀하다.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sangin@snu.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