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8일 러시아의 장단기 외화채권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낮췄다.
S&P가 신용등급을 낮추면서 밝혔던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제유가 하락으로 외국 자본이 탈출하고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8월 이후에 러시아 외환보유액은 1280억 달러가 감소했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의 자금 조달 능력과 국가 신용등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러시아 재무부는 “예상했던 일”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러시아 주식시장도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날 러시아 대표 주가지수인 RTS는 7.2% 올랐다. 신용등급이 내려갈 때마다 시장이 요동치던 과거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일부 러시아 전문가들은 “그동안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준 신용평가회사들이 10년 전처럼 시장에 군림하려는 것은 오산”이라며 비꼬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와 시장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S&P, 너나 잘하세요’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의 신뢰성은 금융위기로 빛이 바랬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불거졌던 지난해 투자자들은 무디스 S&P 피치 등이 제시한 장밋빛 전망을 믿었다가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을 봤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8일 “무디스가 자사 이익 극대화에 혈안이 된 바람에 신뢰를 잃었고,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봤다”고 꼬집었다.
무디스 출신인 토머스 맥과이어 씨는 IHT에 “무디스는 금융시장의 위험을 차단하는 경비견 역할에 충실했으나 1990년대 들어 재갈이 물린 ‘애완견’으로 추락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신용평가회사가 스스로 신용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국제사회도 이들을 견제할 태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유럽연합(EU) 증권감독위원회는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안을 준비 중이다.
물론 신용평가회사들의 의미 있는 지적과 충고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만 해외 평가에 유난히 민감한 한국도 이제는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의 평가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모습을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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