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경제교과서의 가르침은 반대다. ‘명목이자율=실질이자율+물가상승률’이다. 돈을 풀 때 금리가 떨어지는 것은 단기적 현상일 뿐 길게 보면 금리는 반드시 올라간다. 통화증발이 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길게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확연히 달라진다.
②150년 전쯤에 프랑스에서 “일자리 확대를 위해 군대를 키우자”는 주장이 있었다.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경기가 진작된다’는 케인스 학파의 맹아가 18세기 중반에 이미 나타난 것. 이에 대해 프랑스의 경제학자 클로드 바스티아는 저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안보를 위해 군대를 키우자고 한다면 얘기가 된다. 그러나 ‘경제를 위해’는 말도 안 된다. 만약 군대를 키워 경제가 산다면 모든 프랑스 젊은이를 입대시키면 될 것이다. 이는 집집마다 유리창을 깨뜨리면 유리 산업이 번성하고 경기가 좋아진다는 말과 같다. 이런 식이라면 집 안에서는 낮에도 커튼으로 햇빛을 가리도록 강제해 양초 산업을 융성시켜야 한다.”
낭비적 자원 배치는 반짝경기를 띄울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적·물적 자원을 낭비해 나라경제를 뿌리부터 좀먹는다. 이 역시 ‘시선의 길이’에 관한 문제다.
③환율이 높으면 수출이 늘고 경상수지가 개선된다. 그래서 정부는 경상수지 방어를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이곤 한다.
‘긴 경제학’의 경로는 거꾸로다. 국내투자와 국내저축의 차액만큼 자본수지가 결정되고, ‘자본수지+경상수지≡0’의 항등식에 따라 경상수지가 결정되며, 그 같은 경상수지를 발생시키는 수준에서 환율이 정해진다. 예컨대 국민들이 투자 이상의 저축을 하는 일본의 경우 자본의 순유출이 일어나며 그만큼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게 돼 그에 맞는 엔화 환율이 정해진다는 것.
④이상의 예들은 짧은 경제학과 긴 경제학의 거리일 뿐 아니라 현상적 설명과 본질적 설명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국채에 대해서도 발견된다.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침체가 함께 나타나면서 각국 정부는 세금을 깎고 재정지출을 늘리고 있다. 세입·세출의 차이는 국채 발행을 통해 메우는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재정적자를 ‘빚을 후대에 떠넘기는 일’이라고 규정해 윤리적 죄책감이 들게 하는 주장이 있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곰곰 따져보면 국내에서 원화로 발행된 국채는 국민이 국민에게, 내가 내게 진 빚이다. 빚뿐 아니라 원리금 청구권도 미래 세대에 승계된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납세자가 국채 투자자에게 갚는 구조인 것.(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 세수의 대부분은 중산층 이상에 의존하며, 국채도 중산층 이상이 매입하므로 계층적으로도 채권-채무자가 거의 겹친다. 이처럼 국채에 대한 ‘후세대 부담론’은 본질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겉보기 해석일 뿐이다.
물론 재정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누적된 국채는 경제운용에 부담이 되며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이 그런 상황은 아님은 잘 알려져 있다.
허승호 경제부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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