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구조조정 원칙 마련됐다면 현장에서 속도 내야

  • 입력 2008년 12월 10일 02시 59분


원칙과 추진주체가 불분명했던 기업구조조정의 로드맵이 어제야 마련됐다. 구조조정은 퇴출보다는 회생에 초점을 맞춰 채권금융 기관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이견이 있을 경우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가 조정하는 구조다. 정부에선 기업재무개선지원단(단장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지원한다.

그동안 대통령부터 당국자에 이르기까지 말이 서로 다르고 정책과 현장 간의 차이가 커 혼선이 심했다. 정책 방향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의 회생인지, 부실 또는 부실징후 기업의 퇴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조차 불명확했다. 이런 불확실성이 금융시장에선 거래 상대방을 믿지 못하게 하는 신용위기를 낳았다. 결국 32조 원의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는 떨어지지 않았고, 기업 자금난도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가 제때 구조조정 원칙을 밝히고 추진조직을 마련했다면 이런 혼란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정부 스스로 ‘선제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서도 여태 우물쭈물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부실징후 기업에 대한 프리워크아웃 방안이 현장에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잘못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그동안 정부는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면책(免責)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며 부실징후 기업의 판정을 미뤄 되는 일이 없었다. 이런 정부 당국자들을 두고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넘어 낙지처럼 들러붙는다는 ‘낙지부동’이란 풍자어까지 생겼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감독국장은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2년여 검찰 수사와 재판에 시달렸다. 변 전 국장처럼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경계심이 공무원들 사이에 번져 있다면 이를 없애주는 것도 정부 몫이다. 감사원은 소신껏 일한 공무원들을 위해 면책 기준을 오늘에서야 밝힌다. 이명박 대통령이 은행에 기업대출을 독촉한 게 10월 중순인데 은행원들이 요구한 ‘면책보장’ 공문은 11월 26일 나왔다.

정부는 청와대에서 매주 화요일 열리던 서별관회의를 ‘경제금융점검회의’로 공식화하기로 했다. 11년 전 구조조정 경험자들이 위기를 헤쳐 갈 전시지휘부 같은 기구를 만들라고 여러 차례 조언한 것을 이제야 받아들인 셈이다. 말로는 ‘위기’라면서 굼뜨기만 한 정부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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