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1일 낯선 이국땅에 첫발을 디딘 우리 가족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교육문제였습니다. 일본어 한마디 못하는 여섯 살배기가 일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을지, 이만저만 걱정이 크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에 찾아가 접수 담당자를 만났을 때 제 불안은 갑절로 커졌습니다. 그는 “우리 유치원은 일본 애들뿐이어서 적응이 어려울 것이다. 1년 전 외국 아이 한 명이 우리 유치원에 다녔는데 넉 달간 울기만 하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옮겼다”며 은근히 겁을 주었습니다. 원서를 밀어 넣고 돌아오던 저의 가슴속에는 시커먼 쇳덩어리가 올라앉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유치원 첫 개학날. 아이는 담임선생님이 주셨다며 엽서 한 장을 가져왔습니다. 한 획 한 획 정성을 듬뿍 담아 쓴 예쁜 한글이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기쿠치 히로미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한글이 이보다 반가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으로서는 ‘작은’ 배려였을지 모르지만 저는 순간 ‘아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사려 깊은 선생님을 만났구나’ 하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음 날 서툰 일본어로 답장을 하자 선생님은 하루 뒤 긴 일본어 편지를 보내셨지요.
‘편지 내용에서 ○○군 양육에 대한 부모님의 열의를 깊이 느꼈습니다. 저도 부모님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애정으로 보육해 나가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편지는 3일에 불과한 제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세 쪽에 걸쳐 자세히 설명한 뒤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저는 ○○군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한국어 책을 사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독학이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선생님, 기억하시는지요. 졸업을 얼마 앞두고 저희 가족에게 보낸 2장짜리 긴 한글 편지 말입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반에서 단 한 명뿐인 한국 학생을 위해 이토록 노력하는 선생님의 마음가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일본인 특유의 투철한 직업정신일까, 아니면 단순한 호의일까.
이야기가 약간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연수 초기 저는 일본인 T에게서 “한국인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싫지만 배울 점은 많은 나라”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 1위는 일본, ‘가장 배울 점이 많은 나라’ 1위도 일본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얼렁뚱땅 일반화했지만, 사실은 제 속마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류(韓流) 팬인 T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대라면 좋을 텐데…. 당신이 한국에 돌아갈 즈음에는 배울 점은 없어도 좋아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4년이 지난 지금 T가 다시 물어온다고 해도 독도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지도층의 거듭된 망언 등을 신물 나게 지켜본 저로서는 선뜻 T가 원하는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T가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라고 질문하는 대신 “일본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4년 전과는 다른 대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4년 동안 깊은 가르침을 주거나 훈훈한 인정을 베풀어 주신 제1, 제2, 제3의 ‘기쿠치 선생님’을 수없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기쿠치 선생님들,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사요나라.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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