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후 사회-경제적 추락 충격적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감원 태풍이 불고 있다. 위기의 진원인 미국의 실업자 수는 사상 최대치로 치솟았고 일본도 소니가 1만6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하는 등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한국에서도 공기업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식구 수를 줄이고 있다. 기업들은 아직 견디고 있지만 직장인들은 행여 자신의 회사가 감원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산다. 기업은 고용을 많이 해서 사회에 공헌하는데 요즘은 사람을 잘라내야 칭찬을 받는다.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도 감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겨울철 찬 바람 부는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원은 당사자에겐 ‘목을 치는’ 일이며 피눈물 나는 야외 생존투쟁의 시작이다. 외환위기 때 졸지에 직장을 잃은 화이트칼라들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본다면 실직의 무서움을 짐작할 수 있겠다.
1998년 6월 20일 동화은행이 퇴출되면서 직원 1831명 중 신한은행으로 옮겨간 300여 명을 제외한 전원이 뿔뿔이 흩어졌다. 동아일보는 6년 뒤인 2004년 이들 가운데 229명을 찾아내 이후 삶의 행적을 추적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버젓한 중산층이었던 은행원들이 중하층 심지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정수입이 사라지자 은행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이 속출했다. 신용불량자는 취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공사판 막노동, 식당 일용직, 대리운전, 술집웨이터 등으로 고된 삶을 살고 있었다. 식당, PC방, 미용실, 노래방 등 자영업에 진출한 사람들은 대부분 얼마 가지 못해 돈만 날리고 문을 닫았다. 자영업은 ‘퇴출자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왔다. 229명 중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이 45명(19.7%), 중하층에 속하는 사람이 105명(45.9%)이었다. 6년 동안 3명 중 2명은 중하층 이하로 수직 낙하한 셈이다. 빈곤층 가운데는 퇴출 당시 지점장이었던 사람이 9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 가정도 깨진다. 이혼한 사람이 적지 않았고, 자식들이 학업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모진 세파에 견디지 못해 자살하거나 암에 걸려 일찍 세상을 뜬 사람도 있었다. 6년간 이들에게 국가가 해준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회안전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나라가 싫어 이민 간 사람도 많았다.
누구나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호의호식(好衣好食)의 문제가 아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피눈물 나는 얘기다. 자신이 감원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쉽게 말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인위적인 감원은 최후수단 돼야
예기치 않은 금융위기로 급박해진 회사는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해야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회사가 살아남아야 나머지 사람들이라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감원은 최후의 카드가 되어야 한다. 자른다고 칭찬을 듣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감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구본무 LG 회장이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선 안 돼”라고 말한 것은 신선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도 인위적 감원은 없다고 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사정이 다르다. 내년 상반기 금융위기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전이되면 적지 않은 중소기업이 회사 문을 닫거나 감원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고용도 줄어 취업난은 더욱 심해지고 실업자 수도 늘어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정체성과는 다른 정책을 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배려하려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고파서 일어서는 민중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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