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시장에서 흔히 쓰는 말로 하이리스크(high risk·고위험)다. 대중은 지도자를 나무꼭대기 위에 올려놓고 흔들어대다 한순간에 손을 놔 버린다. 박 전 대표는 지금 나무꼭대기 위에 올라가 있다. 스스로 올라갔든, 떠밀려 올라갔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정치는 현실이다.
사람들이 외치는 길은 세 갈래다. 국무총리로 입각해 MB 정권의 소방수로 나서거나, 총리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니 차라리 당을 맡거나, 그것도 위험하니 지금처럼 안전하게 가만히 있거나 하라는 것이다. 모두 득실이 다르고, 변수도 제각각이다.
총리 입각은 MB의 뜻이 우선 변수다. ‘박근혜 포용론’이 나오지만 “이제 그 여자 얘기는 그만하라”고 했다는 게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박을 확실히 죽이려면 총리를 시켜야 한다”는 친이(親李) 일각의 역발상도 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위기인데 박근혜인들 별 수 있겠느냐, 오히려 콘텐츠를 검증해 거품이 드러나게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박 총리 카드’는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회창 총리의 경우처럼 결별이나 분당(分黨)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다시 맡는 게 실질적으로 MB를 돕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굴러들어 온 의석이라 그런지 한나라당의 172석은 도무지 제값을 못하고 있다. 박희태 대표부터가 나른한 표정이어서 위기를 헤쳐가려는 열정과 의지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리스크가 있다. 박 전 대표가 당을 맡더라도 2010년 5월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선거에 강한 박근혜 신화’가 깨지면서 추락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오직 ‘존재감’만으로 정치를 견인해 나가는 게 제일 상책일까. 글쎄다.
어느 길을 가게 되건 이 장면 하나만 스스로 떠올려줬으면 한다. 2004년 총선 때다. 신문에 박근혜 대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유세버스 속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박 대표의 도시락이 유난히 눈에 와 박혔다. 박 대표는 악수로 부르튼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집에서 싸온 김밥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정, 추 두 사람의 도시락은 어디선가 배달해 온 것이었고…. 박 대표의 그 도시락이 정치지도자와 국민의 마음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처럼 다가왔다. 그건 오직 박근혜만이 자아낼 수 있는 끈이었다.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웬만한 가정에선 외식비부터 줄였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 전 대표가 이번엔 당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도시락을 쌌으면 한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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