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묶인 승객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아버지가 위독해 고향인 전남 장성에 가려던 이영석(36) 씨는 열차가 20분 넘게 늦어지자 “안 그래도 입이 바싹바싹 타는데 무작정 기다리려니 1분이 1시간 같다”고 했다. 휴가를 마치고 충남 논산의 부대로 복귀하려던 채모(20) 이병은 “첫 휴가부터 복귀시간을 못 지키면 문제사병으로 찍힐 텐데 어떡하나”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철도노조는 8일 오전 8시부터 열차와 전동차 검수를 규정대로 하겠다며 차고지에서 열차를 늦게 내보내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 새마을호 열차의 출발이 10∼40분 늦어지고 있다.
철도노조는 “최근 인력 감축으로 점검이 소홀해지고 있어 안전투쟁을 통해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보여주려 한다”며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 안건이 대부분 임금협상과 해고자 복직일 뿐 안전관리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파업을 하면 여론 역풍 등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라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사측과 협상이 잘되면 투쟁을 철회할 방침”이라며 ‘안전투쟁’이 사측과의 협상전략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승객 안전을 핑계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려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런 시선을 반영하듯 영등포역 고객 게시판에는 “출발시간도 못 지키면서 웬 안전 타령이냐”, “모두 힘든 시기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서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건 횡포” 등의 불만이 적혀 있었다.
열차 지연의 불똥은 동료 노조원들에게도 번지고 있었다. 개찰구 주변에서 격앙된 승객들을 안내하던 정모 씨는 “우리도 정확한 도착시간을 몰라 달리 해줄 말이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 씨는 “오늘 아침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20분 지연’ 표시가 뜨자 나도 짜증이 나는데 손님들은 오죽하겠느냐”며 “첫차를 타야만 하는 소시민들, 정상 운행하는 KTX 대신 무궁화호를 타야 하는 서민들만 결국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승객들에게 상처를 주는 철도노조의 투쟁이 얼마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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