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은 간단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문제는 어느 지점을 어떤 방식으로 손댈 것인가이다. 지난 외환위기 때와 최근의 미국 경험을 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1997년 가을 우리 정부는 경제가 건전하다고 강변하며 알량한 비축 외환으로 무리한 환율 방어에 나섰다. 물가 불안이 없었고 해외 경기가 좋았던 당시의 해법은 환율을 선제적으로 평가절하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잠재적 구제금융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재정 확대해 최대한 조기집행을
미국 역시 지난가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주택대출 부실이 금융위기로 전파되고 이것이 다시 경기침체와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으려고 대규모 공적자금을 조성한 방안까지는 좋았지만 이를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구제에 쓰려 했다. 그러나 부실이 부실을 부르는 상황에서 위기의 꼬리를 잡는 식의 대책에 대한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결국 은행에는 자본금 지원을 하고, 나머지는 실물경제와 주택시장 하락을 차단하는 데 쓰기로 계획을 바꿨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기침체에 재정 확대로 맞서는 정책은 옳지만 이것으로 위기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실효성 있는 부동산 대책을 내기도 어렵다. 환율 걱정을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에 달러당 1500원 선이라도 당장 경제가 흔들리지 않는다. 돈이 조금만 돌아도 투기성 환율 압박은 사라진다. 역으로 환율이 여기서 더 치솟는다는 것은 이미 실물경제가 절단이 났다는 얘기가 된다. 가계부채가 부실해지고 기업 도산이 확산돼 금융권이 흔들리면 어떤 정책을 써도 뒷북치기가 된다. 지금은 어차피 진행될 경기침체를 따라가며 정책을 펼 게 아니라 실물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되는 최악의 상황을 차단할 과감한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이번 예산안에 포함된 재정지출 항목을 최대한 조기집행해야 한다. 집행 부처를 말로 독려해 봤자 소용없고 총리실이나 임시 기구에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 복지제도 등 재정전달체계를 감독하고 평가하게 해야 한다. 뒤따를 개혁조치 때 자리보존하려면 열심히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는 긴박감을 관료사회에 심어야 한다.
둘째, 20조 원 수준의 공적자금을 선제적으로 조성해 금융기관 부실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이것이 은행을 움직이고 동시에 은행을 지켜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수혜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두렵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사방에 알리는 격이라는 식의 나약한 사고로는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우리 국회가 동의하지 않을 리 없다. 법규정이 걸리면 바꾸면 된다. 공적자금을 당장 조달해 퍼부으라는 말이 아니다. 국회 동의를 얻는 것만으로 정부 신뢰가 오르고 시장안정 효과가 나타난다. 경제가 진정된 뒤 남는 자금은 되갚으면 되고 일부는 어차피 해야 할 제2금융권 구조조정 실탄으로 쓸 수 있다.
창의적인 계약직 많이 만들어야
셋째, 10조 원 수준의 추경예산을 신속히 조성해 오로지 청년실업과 유망 기업 인력지원에 투입하도록 제안한다. 인턴이나 임시직이 아니라 현장 직업훈련을 받게 하는 식의 창의적인 계약직을 만들자는 얘기다. 좌절한 청년들이 촛불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보다는 나은 대안 아닌가. 예산 용도가 분명해 집행도 효율적이다.
위 두 가지를 합해도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이다. 일시적 지출이라 재정건전성 문제도 없다. 질질 끌려가며 나중에 더 많은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일보다 몇 배 나을 수 있다. 이 정도의 정책의지는 있어야 선제적이고 과감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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