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낸 ‘일자리 관련 예산안 쟁점과제’ 보고서를 보면 ‘세금이 아니라 자기 돈이라 해도 이렇게 함부로 쓰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성과가 부진해 폐지했던 사업을 재탕하거나 거의 똑같은 사업을 두고 몇 개 부처가 예산을 신청한 중복 예산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이미 고용돼 있는 직원까지 예산을 투입하면 늘어날 일자리에 포함시키는 사례까지 발견됐다.
노동부는 ‘해외 인턴사업’을 하겠다며 내년에 187억 원의 예산을 요청했다. 이 사업은 실시한 결과 취업률이 20% 정도밖에 안돼 ‘성과 부진’으로 지난해 폐지됐던 ‘해외인턴파견사업’을 이름만 바꾼 것이다. ‘중소기업 인턴제사업’(1262억 원) 역시 같은 이유로 2006년 폐지된 ‘인턴취업지원제사업’의 재탕이다.
노동부 ‘기업연계형사업’(695억 원)과 보건복지가족부 ‘사회서비스선도사업’(41억 원)은 사업 내용과 목적이 거의 똑같은 중복 사업. 통합하면 세금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지적이다.
복지부의 ‘자활후견기관 활성화사업’(285억 원)과 ‘지역아동센터 공부방운영지원사업’(338억 원)은 전체 직원 수를 일자리 지원 수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일자리 수’를 부풀리기도 했다. 예산정책처는 이런 몰염치한 방식으로 짜인 두 사업에 대해 “예산에서 아예 제외하라”고까지 권고했다.
복지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지원’ 사업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관광해설사 양성배치’ 사업 등 10개 사회서비스일자리사업(2281억 원)은 임금이 월 최저임금(90만4000원)에도 못 미쳤다.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아르바이트 수준이지만 우선 일자리의 ‘숫자’에 치중한 탓이다.
일자리는 만들어야 한다. 세금을 쓰는 과정에 일부 누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산을 편성하는 단계에서 “효과가 없어 폐지된 사업까지 되살려 수백억, 수천억 원을 쓰겠다”고 하면 이를 납득할 납세자가 있겠는가.
곽민영 경제부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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