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에 대한 평가는 주로 사법시험 및 사법연수원 성적에 좌우됐다. 이 방법은 객관적 수치를 근거로 했기 때문에 시비의 소지가 거의 없다. ‘재판의 독립’ 차원에서 정치권이나 상급자의 인사개입을 원천적으로 배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시험성적 중심의 승진 서열은 판사가 재직하는 동안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면서 인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 방식은 실제 재판에 필요한 공정성 및 재판 주재자로서의 자질과 품성 같은 중요한 덕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최근에도 무리한 재판운영과 상급심에서 파기되는 비율이 극히 높은 판결을 하는 한 법관의 문제를 놓고 사법부가 내부적으로 고심한 바 있다. 판사가 재판 당사자와 변호사 검사 증인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반말 투로 심문하고, 재판 운용에서 지나치게 전횡하는 경우도 있다고 변호사들은 말한다. 재판 진행이나 판결 성향이 변호사나 검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판사에 대해 법조계 평가를 반영할 길이 거의 없는 것은 문제다. 오죽하면 변호사 단체가 법관 평가제를 실시하자고 나서겠는가. 판사가 재판 당사자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면 법률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나아가 사법부의 권위를 떨어뜨리게 된다.
판사가 헌법의 기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에 충실한가를 따지는 평가도 있어야 한다. 판사의 ‘양심에 따른 재판’도 헌법과 법률의 범위를 일탈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0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법관 재임명 제도 역시 형식에 그치고 있다. 법관 재임명 제도는 독재정권 시절 정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판사를 쫓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됐지만 민주화 시대를 맞아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부적격 판사를 걸러내는 제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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