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체코의 주간지가 1950년 3월 14일자 프라하의 경찰기록에 기초한 기사를 실었다. 기록에 따르면 쿤데라가 경찰에 출두해서 한 외국인이 여학생 방에 백을 두고 갔다고 신고했다. 백의 임자는 곧 체포되었는데 그는 외국인이 아닌 드보라체크란 이름의 체코 청년이었다.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독일로 가서 미국에 협력했던 그는 22년 중노동형을 받았다. 14년간 우라늄광산에서 복역한 후 석방되었고 1968년에 스웨덴으로 망명했다.
58년전 밀고 의혹으로 곤욕
기사가 나간 직후 파리의 쿤데라는 거짓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역시 망명객인 한 체코인 극작가는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경찰기록을 공개하는 행태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또 경찰기록을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 정권 연구소’ 근무자가 드보라체크가 백을 두고 간 방 임자인 여학생의 친척이란 점을 들어 의문을 제기했다. 공산주의 시대에 관해서 쓰는 사람들이 그 시대의 언어와 어휘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1989년 ‘벨벳 혁명’에 적극 가담했던 고위 인사도 그 점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마르케스를 위시한 세계의 정상급 작가 11명도 악의에 찬 명예훼손이라며 주간지 보도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다.
쿤데라의 신고 여부에 대해 우리는 논평할 입장에 있지 않다. 도덕적 비판에 앞서 사실관계의 확인이 필요하다. 언젠가 자세한 진상이 밝혀지길 바랄 뿐이다.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시 상황에 대한 고려는 필요하다. 당시 그는 21세의 학생이었고 확신에 찬 공산주의자였다. 그렇다면 그의 신고는 있을 수 있는 일일 터이다. 세상모르는 젊은 시절의 행동이 뒷날의 쿤데라를 형성했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 적의 신념이나 생각을 평생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장한 일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생각과 신념이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의 신고가 한 청년의 일생을 파멸시킨 점에 대해선 큰 죄를 지은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속사회가 간단없이 종용하고 장려하는 죄가 아닌가?
1960년대 말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했던 쿤데라는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망명 후 그는 체코에서의 반체제운동에 소극적이거나 비판적이었고 투옥된 바츨라프 하벨을 위한 진정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옛 반체제운동가 사이에서 쿤데라의 평판은 좋지 않다. 뿐만 아니라 국내 잔류자는 해외에서 안전을 즐기는 망명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게 보통이다. 경찰기록 보도는 이들에게 쿤데라 비난의 좋은 구실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벨벳 혁명 후 체코 대통령이 된 하벨은 플라톤 흐름의 ‘철학자 왕’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발언에서도 그는 희귀한 예지와 덕성을 보여주고 있다. “친애하는 젊은 역사가들이여, 역사를 심판할 때 주의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의 조부들이 그랬듯이 유해무익한 짓을 하게 될 뿐이오. 나는 믿지 않지만 설혹 쿤데라의 간첩 신고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맥락 속에 놓고 보아야 할 것이오.”
“당시의 맥락 속에서 보시오”
정치실천과 문화실천에서 두루 큰일을 한 사람만이 토로할 수 있는 말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각별한 위엄과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하벨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신고 사실이 확인되면 쿤데라의 명예는 큰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정치적인, 지나치게 정치적인,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회는 만년 후보인 그를 마음 놓고 배제할 것이다. ‘우리들의 유일한 불멸(不滅)은 경찰서 서류함 속에 있다’고 ‘웃음과 망각의 책’의 한 작중인물은 말하고 있다. 비밀경찰에 의존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어두운 불빛은 이렇게 만인을 덧내주면서 꺼질 줄을 모른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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