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관광 ‘환율 특수(特需)’

  • 입력 2008년 12월 15일 03시 01분


요즘 서울 명동을 걷다 보면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큰길은 물론 골목골목마다 쇼핑백과 서울지도를 든 일본인 관광객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여간 반갑지가 않다. 이들이 풀죽은 우리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들은 고궁이나 박물관 같은 한국의 전통문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쇼핑이나 피부관리에만 열을 올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들 덕에 환율 특수(特需)를 누린다니 다행스럽다.

▷지난해 원-엔 환율이 100엔에 740원으로 하락했을 땐 한국 쇼핑족들이 도쿄와 오사카 쇼핑가를 휩쓸었다. 전세기를 이용해 토요일 새벽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이틀간 도쿄에서 쇼핑을 하고 월요일 새벽에 돌아오는 ‘밤 도깨비 여행’도 성행했다. 고객은 주로 젊은 직장 여성으로, 빈 여행 가방 하나 들고 나가 돌아올 땐 옷 구두 핸드백 등으로 가득 채워 왔다. 불과 1년 사이 상황은 역전됐다. 원-엔 환율이 1600원까지 치솟으면서 일본인이 ‘바이 코리아’를 위해 서울로 몰려오고 있는 것.

▷지난해 관광수지 적자는 100억 달러를 넘었으나 올해는 엔고(円高) 덕에 관광 수입만 사상 최대인 86억 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 관광객들이 쇼핑과 마사지 외에는 할 일이 없다고 느낀다면 특수는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2004년 일본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한국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로 32.5%가 ‘매력적인 관광지가 없을 것 같아서’, 31.5%가 ‘의사소통이 안 될 것 같아서’를 꼽았다고 한다.

▷관광이 일회용 특수가 아닌 경쟁력 있는 산업이 되려면 콘텐츠가 좋아야 한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불러온 한류(韓流) 관광에서 보듯이 관광 상품에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한국의 독특한 생태 문화 역사 예술을 하나로 묶어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바른 방향이다. 먼저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관광산업을 살리려면 콘텐츠 개발이 먼저다. ‘겨울연가’를 뛰어넘는 새로운 콘텐츠가 나와야 사람이든, 장소든, 관련 상품도 꼬리를 물고 개발될 것 아닌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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