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정말 예산안 제대로 처리하려고 싸웠나

  • 입력 2008년 12월 15일 03시 01분


13일 내년도 예산안 강행 처리로 정국이 얼어붙고 있다.

민주당은 “졸속·밀실 처리된 부실 예산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정치적 악용으로 쓸데없이 (심의가) 지연됐지만 굉장히 충실하게 심의됐다”고 자평했다.

밤새 현장을 지켜본 기자는 이번 예산안 심사가 애초부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여야의 밤샘 대치도 ‘나라 살림살이를 어떻게 하면 잘 짤 수 있을까’라는 진정성의 발로라기보다 기(氣)싸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10월 2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정부는 11월 7일 수정안을 냈다. 하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는 12월 1일에야 처음 열렸다.

국회는 그동안 국정감사와 쌀 소득보전 직불금 국정조사 등에 매달리느라 진지하게 예산심사를 하지 않았다. 결국 예산안 처리 합의 시한인 12일을 앞두고 시간에 쫓긴 여야는 예산안을 졸속 처리했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선 특정 예산에 대해 “200억 원을 깎자(야당)”, “50억 원만 깎아 달라(정부)”, “100억 원만 감액하자(여당)”는 식의 흥정이 난무했다. 하지만 왜 200억 원을 깎아야만 하는지, 50억 원 감액의 근거는 무엇인지는 따지지 않았다.

민주당이 부실·밀실 예산 처리라며 농성을 벌인 12일 밤.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일부 야당 보좌관들은 기자에게 동그라미가 쳐진 지역구 사업 목록을 보여줬다. 여당으로부터 관련 예산을 얻어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와중에도 챙길 것은 챙기는 게 능력”이라고 자랑했다.

13일 아침 민주당이 빠진 채 진행된 계수조정소위에선 1000여 쪽에 달하는 예산자료의 검토를 불과 1시간 반 만에 마쳤다. 정치 쟁점이 된 사업을 제외하면 여야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예산안을 ‘부실’ 또는 ‘충실’로 판정했는지 알 수 없다. 의원들이 그렇게 단시간 내에 예산안을 확정할 만큼 전문성과 생산성이 있는 것일까.

김형오 국회의장은 12일 예산부수 법안의 직권상정을 앞두고 기자에게 “시간을 한 달 더 줘봐라. 그동안 충실히 심사하는지…”라고 말을 흐렸다.

주부들의 가계부 관리보다 엉성하게 나라 살림을 다루는 이들이 과연 국회의원이 맞는지…. 졸속 국회에 국민은 한숨만 나온다.

이진구 정치부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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