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민병돈]日人도 존경하는 ‘조선의 영웅’

  • 입력 2008년 12월 16일 02시 59분


日人도 존경하는 ‘조선의 영웅’후손인 우리가 잊고 살아서야

충무공 이순신 410주기 아침에

“해로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군은 일본군보다 우세한 함선을 보유하고 있어서 해상을 완전히 장악하고 단 하루에 300척의 수송선이 격침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일본군의 식량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병사가 탈영하여 귀로에 오르지만 기아에 쫓기고, 중도에 포위하고 습격하는 조선인들의 손에 죽거나, 해안에 이르러도 탈 배를 구하지 못해 몰살당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안전한 은신처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배는 매우 견고하고 거대하며 윗부분을 덮은 배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배들은 접전 시에 불을 내뿜는 장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일종의 철포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포탄을 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꼬리 부분과 똑같은 형태의, 끝이 뾰족하고 어른의 다리만큼 굵은 화살(대장군전·大將軍箭을 정확히 묘사함-필자 주)을 발사했다.”

두 편의 글은 임진왜란 당시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신부로 일본에 파견된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가 가톨릭 신자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에서 1년여 동안 종군한 후 내놓은 보고서의 일부이다. 성직자이며 지식인으로서 전장의 실상을 그대로 묘사한 내용이어서 충무공 이순신의 함대가 막강했음을 말해 준다. 일본인이 쓴 역사책에도 이순신 장군을 격찬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이순신의 죽음은 넬슨의 죽음과도 같았다.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어서도 이겼다. 조선역(朝鮮役·임진란) 7년에 걸쳐 조선에 책사·변사·문사가 여럿 있었지만, 전쟁에 있어서는 참으로 이순신 한 사람으로써 자랑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일본 수군 장수들은 뜻을 펴지 못했다. 그는 실로 조선역에서 조선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을 통틀어 한 영웅이었다.”(근세일본국민사 제9권)

러일전쟁 때 러시아 연합함대와 일본제국의 운명을 건 일전을 치르려고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휘하의 함대가 1905년 5월 27일 오전 6시 반 진해만을 떠나 동해로 항진하는 동안 해군장교 중에는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이순신 장군에게 기도한 이도 있었다.

러시아 함대를 크게 격파한 도고는 일본의 영웅이 되었다. 도고 사령관은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자신을 넬슨이나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자 “나를 넬슨에 비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순신에 비유하는 것은 과하다”며 겸양의 태도를 보이곤 했다.

6월 서점에서 ‘이순신을 암살하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집어 들었더니 40대의 젊은 일본인 전기작가 아라야마 도루(荒山徹)의 소설을 번역한 것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하여 1년간 한국 유학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가고 수백 년이 흘렀건만 그는 아직도 일본인, 특히 지식인과 직업군인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다. 저들이 존경하고 연구하는 우리의 이순신 장군을 정작 우리가 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순신 장군에 관하여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제는 일본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상황이다.

그는 충성을 바쳤던 임금(선조)에게도 버림받았고, 혼신의 노력으로 목숨 바쳐 지켜준 조국의 후예에게도 잊혀지고 있다. 오늘 16일은 양력과 음력이 일치하는 충무공 이순신의 410주기이다. 못난 후예로서 옷깃을 여미며 고개 숙여 용서를 빌 뿐이다.

민병돈 전 육사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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