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존엄사’ 대법원 판결 주목된다

  • 입력 2008년 12월 18일 02시 59분


세브란스병원이 김모(76) 씨에 대한 1심 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존엄사에 관한 법률이 없고, 국내 판례가 거의 없어 이번에 대법원 판례가 나올 계기가 마련된 것은 의미가 자못 크다. 대법원은 2004년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경제적 이유를 내세운 가족의 뜻에 따라 치료를 중단한 의사들을 살인방조죄로 형사처벌한 전례가 있다. 세브란스병원 사건은 존엄사와 관련한 국내 최초의 민사사건이고, 1심 판결의 취지가 보라매병원 형사사건 판례와 다르기 때문에 대법원 전원합의부에서 다룰 가능성이 높다.

존엄사가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엔 아직 이르다. 적극적 생명 연장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만 하더라도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 있다. 회생 불능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있다. 그러나 존엄사 허용이 패륜적 생명 방기(放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반대론도 만만찮다.

식물인간 상태도 매우 다양해 사안별로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 환자의 생명에 관한 중대 사항은 담당 의사 개인의 판단이 아닌 병원윤리위원회 같은 기구에서 심의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존엄사와 관련해 환자의 의사(意思) 확인, 치료 중단을 판정하는 주체와 절차 등은 결국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

존엄사를 인정하더라도 우선 환자 본인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존중돼야 한다. 세브란스병원 사건 1심 판결에서는 ‘환자의 평소 태도에 비추어 가족과 환자의 뜻이 같을 것’이라고 추정했으나 의식이 있을 때 미리 환자의 뜻을 확인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이나 호흡장치 삽입술을 받을지를 사전에 유언으로 밝혀 놓는 제도가 정착돼 있다. 법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 하급심 판결만으로 존엄사를 시행한다면 생명 경시로 이어질 수 있다.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가 수긍할 수 있는 조건을 합의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브란스병원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 같은 논의의 분수령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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