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납세자 화나게 하는 연말 ‘남는 예산 펑펑 쓰기’

  • 입력 2008년 12월 18일 02시 59분


올해도 연말이 다가오면서 시내 곳곳에서 길을 막고 차도나 보도를 파헤치는 공사 현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필요해서 하는 공사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해가 바뀌기 전에 남은 예산을 쓰기 위한 낭비성 예산 집행이다. 예산을 아끼고 남기면 불용액(不用額)으로 처리돼 내년 예산에서 삭감될까 봐 국민 혈세를 펑펑 써대는 것이다. 멀쩡한 보도블록이 뜯겨 나갈 때마다 아까운 세금도 줄줄 새나간다.

서울시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도로상의 예산 낭비 폐단을 바로잡겠다며 도로법 시행령에 2년으로 규정된 ‘보도 굴착 통제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는 지침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거리 개선사업에 따라 새로 조성되는 보도만 해당될 뿐 일반 보도는 대상에서 빠져 있어 ‘반쪽짜리 조치’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시공의 정밀도를 높이고 자재를 고급화하면 5년이 아니라 10년 이상도 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행령에 굴착 통제기간을 명문화하고 대상도 전체 도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옳다.

‘남는 예산 펑펑 쓰기’는 정부의 예산 일탈을 감시해야 할 국회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국회에선 의원들이 주최하는 갖가지 명목의 토론회와 공청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북새통을 이룬다. 2005년부터 의원 1인당 3000만 원씩 지급돼온 ‘정책개발비’를 타내려면 어떤 행사든 일단 연 뒤에 관련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광경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예산결산위원회가 매년 예산안 심사를 끝내고 관행처럼 즐긴 ‘위로성 해외출장’을 올해는 안 가기로 한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다. 예산안 심의와 계수조정은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다. 당연히 해야 할 직무를 하고서는 무슨 국가공훈이라도 세운 양 외국에 놀러가 달러를 낭비하는 게 정상일 수 없다. 이와 유사한 관행을 모두 찾아내 없애야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정부 부처, 사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 가릴 것 없이 이런 식으로 새는 세금이 한두 푼이 아니다. 불용액만 모두 아껴도 국민의 세금부담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예산안을 한 줄 한 줄씩, 한 장 한 장씩 들여다보며 낭비성 정부 지출을 줄여가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의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왜 이런 약속을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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