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인간이 신과 같은 존재라면 정치가 필요 없을 것이요, 한편 흉악한 짐승 같다면 동물적 생존 질서만이 형성돼 정치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므로 오로지 그 중간에 있는 인간 세계에서만이 정치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뜻이다.
금융위기 절박한 상황서 추태
최근 우리 국회는 전쟁 상태다. 18일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단독처리 상정하는 과정에서 책상과 의자 바리케이드, 해머와 전기톱, 소방호스와 소화기가 등장했다. 국회의원, 당직자, 국회 경위 등 수백 명이 뒤엉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사실 이와 같은 파행 국회를 한두 번 보는 것이 아니어서 ‘또 그짓들 하고 있구나’ 하고 당연해할 법도 한데,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야수인가?
민주화 20년이 지나고 2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하면서 우리 정치도 이제 민주주의의 뿌리가 내렸다고 생각했다. 과거 오랜 군부독재 시절에 불가항력적인 몸싸움과 점거농성 등은 그래도 명분이 있었다. 권위주의 독재세력이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하는 구조에서 소수 민주세력은 국민적 여론의 지지와 정당성을 가지고 투쟁했다. 그런데 21세기 선진화의 문턱에서, 더욱이 세계금융위기의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 국회는 구태의연한 저질적 정치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본래 어느 국가든 국가정책은 진보와 보수의 연속선상에서 진동하게 돼 있다. 민주적인 국가는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독재국가는 개인 또는 소수세력에 의해서 정책방향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정책 내용보다도 정책이 결정돼 가는 과정을 중시하며 국민주권, 정치평등, 국민협의, 다수지배의 원칙을 기본원리로 한다. 여기에 성숙된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서는 관용의 원칙이 첨가돼야 한다. 반대쪽 존재의 인정과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바로 관용인 것이다.
한나라당의 무리한 단독처리 상정은 관용이 결여된 독선적 행위이다. 내년도 예산안의 헌법처리 시한을 넘겨 강행처리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또다시 야당 참여를 물리적으로 배제한 채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전격 처리한 것은 전술적 과오라기보다는 약육강식의 야수적 발상이다. 중요한 법안일수록 적절한 토의와 민주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소 지연되더라도 그 결과는 더욱 정통성을 갖게 될 것이다. 패자를 완패시킨다면 그 패자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상대 인정·배려하는 관용을
민주당 역시 관용이 부족해 정권교체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소수 여론에 매달려 생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수에 밀리더라도 민주적 과정을 통해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이다. 정책이나 법안의 옳고 그름은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요, 곧 다음의 선거에서 판결이 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야수적인 투쟁본능으로 생존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변화에 대한 현명한 적응이야말로 오늘과 내일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다.
제18대 국회는 개원부터 제때 하지 못하고 ‘식물 국회’가 되더니 이제는 ‘전쟁 국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와 법이 실종된 국회에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고 나아가 국민과 국가에 대한 생각도 있을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선과 악, 그리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는 데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실천할 악과 불의는 민주주의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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