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면 비주류가 주류가 되고, 소수가 다수가 되기는 쉽지 않다. 영국 보수당의 18년 장기집권에 마침표를 찍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도쿠가와와 달리 주류를 닮아가는 방법을 구사했다. 41세에 노동당 당수직을 맡은 그는 노조 기업 세금정책 등에서 노동당이 추구해 온 진보의 가치를 과감히 수정했다. ‘제3의 길’로 포장됐지만, 국민 다수의 정서를 간파하고 보수당을 닮아간 것이다. 그는 보수의 상징인 마거릿 대처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가 보통의 흑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오늘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살 때 동네 아이들이 자신을 저수지에 빠뜨리자 나와서는 화를 내거나 토라지기는커녕 웃음을 보임으로써 그들을 친구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민주당에 고언(苦言)을 해주고 싶어서다. 민주당이 지금 하는 행태를 보면 아예 주류나 다수 되기를 포기한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우선 자신들이 소수라는 분수(分數)를 모른다. 지난 10년간 주류로 살아온 환상이 남아서일까. 소수가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다수가 되려는 동기가 생겨날 리 없다.
소수로서 다수를 상대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민주당이 진짜 서민과 민생을 위하고, 정책과 법안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라도 더 챙기려면 무슨 수를 쓰든지 정부와 한나라당을 설득하는 집요함을 보여야 정상이다. 그러나 완전히 거꾸로다. 다수가 도와달라고 사정하고, 소수는 배짱을 부린다. 대통령과 한나라당 사람들이 만나자고 해도 오히려 피한다. 할 줄 아는 게 오로지 그들을 상대로 어깃장, 오기, 투정을 부리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야 어떻게 경제난에 힘들어하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구제금융안 처리를 위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무릎까지 꿇은 것은 자신이 아쉬운 처지였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다수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려는 노력에는 더더구나 관심이 없다. 대선에서 530만 표 차이와, 총선에서 한나라당 172석 민주당 83석의 차이는 다수 국민의 의중(意中)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한 발짝이라도 다수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멀어지려고 애를 쓰는 형국이다. 당의 노선을 중도개혁에서 ‘새로운 진보’로 바꾸려 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선명성을 내세워 한나라당과의 노선 차를 더욱 크게 벌리면 일견 멋있어 보이고, 소수의 투쟁가에겐 좋은 밥벌이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수 국민에겐 거부감과 불안감만 키울 뿐이다.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정당이 무슨 수로 집권을 꿈꿀 수 있겠는가. 민주당은 이제라도 소수로 살아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