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 지난 두 정권에서 잃어버린 것을 명예롭게 되찾아 오는 일이 국민의 바람이었다. 우선 보수 세력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수호가 급선무였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수사하에 체제의 이질성을 덮으려 했던 북한과 달리 민주적 질서에 따라 경제성장을 해 온 한국의 자신감을 회복한 바탕 위에서 핵 포기 의사와 자기개혁 의지가 없는 한 북한 비위 맞추기나 퍼주기를 하지 말고 원칙 있는 대북 포용정책을 펴는 동시에, 전통적인 우방과의 우호관계 회복을 희망했다.
둘째, 유권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점차 무너져가는 ‘중산층 회복’을 갈망했다. 보수정권의 기반은 잘사는 사람이나 대기업 또는 기득권층이 아니라 튼튼한 중산층이다. 중산층이 탄탄하지 않으면 포퓰리즘에 흔들리거나 좌파정권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나눔과 베풂에 옹색하지 않은 따뜻하고 온정적인 보수를 사람들은 바랐다.
정권기반 중산층 튼튼하게
셋째, 국민은 공무원 조직과 공공부문의 방만함에 철퇴를 가하길 바랐다. 세금의 소중함을 모르고 공공부문 확대 및 자기 조직 비대화만을 도모하는 공무원, 자신의 복지 외엔 관심이 없는 노조, 나랏돈을 빌려 자기들의 이념을 고취시키려는 세력을 혁파해 주길 바랐다. 공공부문의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한 민간부문의 활성화가 바람이었다. 아울러 보수 세력은 민족이라는 이름에 함몰되기보다는 국제사회에서 응당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기 원했다. 세상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국내와 한반도에만 머물러 있던 시각을 넓혀주길 바랐다.
지난 1년간 보수정권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북한 편들기를 그만둔 것은 확실하다. 그 점에서 보수의 기본원칙을 지켰다. 하지만 참고 기다리는 일 이외의 대북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역으로 정권 초반 쇠고기파동에서 보여주듯 미국을 향해선 한국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지 못했다. 중산층 끌어안기도 초반에는 낙제점이다. ‘고소영’ ‘강부자’ 정권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듯이 기득권세력 중시, 잘사는 사람 중시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서민 및 중산층 보호대책에 나선 것은 경제위기가 닥치면서였다.
공공부문 개혁은 초반기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나서 모든 공기업을 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했다. 공공부문은 처음에 무서워 납작 엎드렸다가 나중에 함께 저항하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공공부문 개혁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우선순위가 밀리고 말았다. 다가오는 경제위기 속에 경제정책은 우왕좌왕했지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나 다자 간 국제회의 무대에서 한국의 적극적 활동이 눈에 띈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권출범기와 달리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세력이 무당파로 떨어져 나가고 적극적 지지층이 소극적 지지층으로 돌아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정권이라 기대했는데 무엇 하나 맘에 쏙 들게 하는 게 없다는 넋두리가 횡행한다. 결단력 있는 추진력을 보이기보다는 햄릿같이 고민하면서 인적 쇄신과 정책전환의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것이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정이다. 하지만 적극적 지지를 거두어들인 세력도 반대만을 앞세우고 폭력과 시위에 의존하는 야당 세력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는 게 희망의 불씨다.
결단력 있게 변화 주도해야
그렇다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지 세력과 중산층을 껴안으면서 개혁과 변화를 주도하는 보수 세력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가진 것을 지키려고만 하는 ‘수구’여서는 결코 지킬 수 없는 게 세상의 진리이고, 보수의 본모습도 아니다. 개혁하는 보수라야 살 수 있다. 반대세력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국가정통성 회복, 중산층 살리기, 공공부문 개혁, 국제적 위상 강화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적극적으로 결단력 있게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개혁하는 보수가 아름답고, 그래야 국민의 눈에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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