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엔 돈이 넘쳐나는데 기업 돈 가뭄은 해소되지 않는 ‘돈맥경화’가 여전한 것은 대출에 소극적인 은행 탓이 크다. 그렇지만 금융위원회가 내년 1월에 20조 원 규모의 은행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기로 했으니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핑계로 대출을 꺼릴 수도 없게 됐다. 주택금융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은행 부실채권을 선제적으로 매입해주기로 한 만큼 은행들은 잠재적인 부실 걱정을 상당 폭 덜었다. 금융감독원이 중소기업 지원 ‘패스트 트랙(신속절차)’에 따라 대출한 은행원에 대해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부실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지도 한 달이 다 돼간다.
이런데도 은행들이 돈을 움켜쥐고 제 앞가림만 하려 든다면 실물경제위기를 증폭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 김종창 금감원장이 시중은행장들에게 중소기업 지원을 거듭 독려할 예정이다. 은행장들은 이 자리에서 금융과 실물의 동시 붕괴를 막기 위해 자금중개 기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중앙은행이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하는 대책이 한국에선 나오지 않도록 시중은행들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금감원은 기업대출 실적에 따라 은행에 대한 차별적인 지원과 제재를 시행해 개별기업 사정을 잘 아는 은행이 미시적인 대출정책을 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는 은행에 자본확충펀드를 지원한다고 해서 과도한 경영개입을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난 2년간 단기실적을 위한 외형경쟁 끝에 경영난을 자초한 은행에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회생가능성이 낮은 기업에는 무조건 지원할 게 아니라 거래은행을 통한 구조조정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자동차업계에 174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하되 구조조정 노력이 미진할 경우 지원금을 회수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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