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 효력이 발생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히려 대대적인 해고를 촉발하는 셈이다. 내수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한 현실에서 당장 닥쳐 올 수십만 명의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뉴딜정책을 소개하고 싶다.
1933년 미국의 경제공황은 그야말로 심각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뉴딜을 선포했다. 이어 공공사업계획국을 신설하고 민간자원보존단(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을 구성했다. 그 결과 1935년 8월에는 50만 명이 CCC에 가입했다.
CCC는 정부가 주도한 공공사업이다. 주로 비정규직에 종사했던 무직자가 참여해 한 달에 30달러의 임금을 받았다. 정부는 이들이 받는 30달러 중 25달러를 직접 가족에게 보냈고 나머지 5달러로 생활하도록 했다. 참가자는 군대생활같이 텐트나 막사에서 살면서 정부가 제공하는 하루 세 끼 음식을 먹고 현역군인 약 2만 명의 지휘감독 아래 있었다.
하는 일은 주로 사회기간시설 건설이었다. 라스베이거스 근처의 웅대한 후버댐을 이들이 건설했고 전기와 전화 설비, 야외 운동장 등 대규모 공사도 맡았다.
5조 그루가 넘는 나무를 미 전역에 심는 등 이들의 기여는 대단했다. 이들은 군대식으로 유니폼을 입고 엄격한 규정 아래 단 한 번도 파업이나 시위를 하지 않았다. 7년 동안 쓴 비용은 총 20억 달러였다.
한국도 CCC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정부채권을 발행하면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헤매던 자금이 안전한 채권을 구매할 것이라 믿는다. 1년 뒤에 경제가 회복되면 어차피 이 프로그램은 자연 도태된다. 한반도 전체에 혜택을 주는 거대한 공사를 하면 된다.
나는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30년 넘게 토목설계회사를 운영하면서 미국 내 500위 안에 드는 설계회사로 성장시킨 경험이 있다. 내 전공은 상하수도 정화였다. 직업의식 때문인지 서울의 하수도 문제에 흥미를 갖게 됐다.
한국은 14번째 경제대국이라기엔 너무도 창피하게 하수도 해결 방법이 미국에 비해 약 60년 뒤처져 있다. 서울 여의도에는 최첨단 고층건물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 뒷골목에 가면, 특히 여름철엔 음식찌꺼기가 담긴 대형 쓰레기통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코를 막고 빨리 지나가야 한다.
강남엔 고급식당이 즐비하다. 찬란한 장식과 멋진 인테리어는 세계 어느 곳에 견줘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일류가 틀림없다. 하지만 식당 뒤 부엌 쪽으로 가서 보면 음식찌꺼기를 플라스틱 백 안에 넣고 국물을 짜내기 위해 발로 밟는 걸 볼 수 있다. 국물이 많으면 구청의 환경미화원이 투덜거리며 심지어는 그냥 놓고 간다고 한다.
음식찌꺼기는 미국처럼 가정의 부엌에서 스위치 하나로 몽땅 갈아서 하수도로 내려 보내야 한다. 특히 한국음식 같이 양념이 많은 음식물은 직접 갈아 내보내는 시설이 더욱 시급하다. 시청에 물어 보았더니 음식찌꺼기를 하수도로 내보내면 하수 정류처리장에 아직 시설이 부족하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도 없어서 곤란하다고 답한다.
이게 무슨 대단한 기술이냐고 다그치니 ‘위’에서 하라는 지시가 없다는 답변이다. ‘위’가 누구인가. 위에 계신 분은 가사도우미가 차려 놓은 아침 밥상을 받고 식사가 끝나면 문 앞에 세워 놓은 고급승용차 뒷자리에 타고 신문을 보거나 전화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비서의 안내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경례를 받으며 사무실로 들어간다.
이러니 아침 밥상에서 남은 음식찌꺼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 바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 높은 분들의 무관심이 한국을 이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후진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루스벨트의 CCC 프로그램처럼 전국에 하수 처리장을 건설해 경제대국답게 서민도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해야 한다.
동시에 앞이 캄캄한 비정규직 실직자와 가족에게 적어도 1년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해야 한다.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