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대표와 원내대표가 번갈아가며 예고방송하듯 “연말까지 100여 개 쟁점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25일이 민주당과의 협상 시한(時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효과적인 정치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 사이 민주당은 본회의장 점거를 치밀하게 준비했고, 군사작전하듯 실행에 옮겼다. 한나라당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민주당의 의도는 뻔하다. 한나라당이 경위권(警衛權)을 발동해 출입문을 도끼로 부수고 자신들을 강제로 끌어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처리 때 재미를 본 ‘여론의 역풍’이 다시 불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방송들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신발도 벗겨진 채 끌려 나가는 모습과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무릎을 꿇은 채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 등을 생생하게 전해 민심을 자극했다. 노사모를 비롯한 친노(親盧) 단체들은 탄핵 규탄 집회로 탄핵 역풍을 부채질했다. 한 달 뒤,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얻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제위기로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민주당이 깔고 앉은 법안들 중에는 경제를 살리고 피폐해진 민생을 보듬을 긴급법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본회의장 점거 같은 구태(舊態) 정치로 민생을 더 어지럽히는가. 민주당이 의사당 점거를 풀지 않으면 민주주의와 민생을 모두 죽인 정당으로 두고두고 응징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민주당은 점점 더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현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쟁점법안의 단독 처리에 나서는 것은 부작용과 후유증을 키울 우려가 높다. 민주당의 노림수에 말려들 수도 있다. 이 순간의 국회는 민의의 전당도, 입법기관도 아니다. 소수가 떼쓰고 점거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국회라면 차라리 공전(空轉)시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현실적 차선책일 수는 있다.
한나라당은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협상을 시도하되 민주당 의원들이 제 발로 본회의장을 걸어 나올 때까지 경제와 민생을 살릴 수 있는 법안들을 좀 더 꼼꼼히 손질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힘쓰는 게 나을 것도 같다. ‘속도’를 강조해 온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 2년차 구상을 더 치밀하게 다듬고 인사(人事)에 속도를 내 정부의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국민도 민주당이 갈 데까지 가도록 한번 내버려 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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