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준]갈등을 타협으로 푸는 사회를

  • 입력 2008년 12월 29일 02시 58분


연말이 되면 신문이나 방송이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한다. 올해 역시 언론마다 이미 10대 뉴스를 보도했거나 아니면 보도할 예정이다. 올해 선정된 뉴스를 보면 유난히 국민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뉴스가 많다. 특히 사회적 갈등과 관련된 소식이 많았다.

극단적 불신-반목, 사회불안 낳아

지난 봄 서울 시내 곳곳을 촛불로 뒤덮었던 시민과 공권력의 갈등에 이어, 연말에는 밀린 법안을 밀어붙이기로 처리하겠다는 여당과 이를 물리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야당 사이의 갈등 때문에 국회가 폭력과 욕설로 뒤덮였다. 역사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학계 내부의 갈등이라든지 교육정책의 방향에 대한 정부와 전교조 간의 갈등도 있었다. 언론 관련 법안 개정에 반발하는 언론노조의 파업 때문에 방송이 파행이나 중단될 위험에 놓여 있는가 하면 기업체의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우려 속에 내년에는 노사분규가 한층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사회적 갈등은 보는 시각에 따라 매우 다르다. 사회질서 유지와 구조의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부정적 시각이 있는가 하면,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긴장을 해소하고 새로운 혁신을 가져온다고 보는 긍정적 시각이 있다. 갈등의 긍정적 순기능이나 부정적 역기능 모두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고 해결되는가에 밀접히 관련된다.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인 사회적 불합리나 모순을 지적하고 의견이나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서로 소통과 설득을 통해 합의를 지향한다면 갈등은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사회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아서 서로 불신하고 반목하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려 든다면 사회의 불안정을 가중시키기만 할 것이다.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 극한적 갈등은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갈등은 문제점을 해결하고 혁신을 가져오는 긍정적 측면은 거의 없고 사회를 양분시키고 불신과 갈등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부정적 측면만 존재한다. 왜 우리에게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갈등만 주로 존재하는 것일까?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려면 갈등의 당사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협의나 협상을 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의 갈등은 상대방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야당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의회일정을 진행하려 한 여당이나, 의사당 점거라는 실력행사를 통해 의회일정을 원천봉쇄하려는 야당이나 모두 갈등 그 자체가 중요하지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남북관계에서의 갈등이나 노사관계에서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의 파트너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대방을 꺾어 이기겠다는 생각만 할 때 갈등은 영원히 해결되지 못한다.

상대 인정하고 대화로 해결해야

갈등이 일어났을 때 결과와 상관없이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자세만을 지조가 있다고 보고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에 노력하는 과정을 타협적이라고 매도하는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 또한 갈등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된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다가 한쪽이 힘으로 몰아붙여 승리하더라도 패배한 쪽에서는 결코 협력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만 오면 지난번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또다시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갈등은 점점 증폭될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으로 선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선진사회라고 해서 갈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선진사회에서 갈등은 서로 상대방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발전적인 해결을 위해 서로 소통하면서 합의를 지향하는 과정이다. 우리 사회 역시 이처럼 갈등을 제도화할 수 있을 때 선진사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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