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진석]정부 성과계획서 제대로 만들어야

  • 입력 2008년 12월 29일 02시 58분


연말인 요즘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엔 의원실마다 포장도 뜯지 않은 대형 종이상자가 1, 2개씩 놓여 있다. 정부가 올해 처음 국회에 제출한 성과계획서다.

성과계획서는 지금까지 측정한 적이 없는 정부 정책의 효율성을 따져보기 위해 도입됐다. 민간기업처럼 투입 예산에 비해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냈는지 따져보고 정부의 중장기 재정운영계획에 반영하자는 취지다.

49개 정부기관이 제출한 성과계획서는 국회의 ‘예산 정쟁’ 탓에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 해가 저물도록 성과계획서의 부실함을 제대로 살펴보는 의원들은 없다.

성과계획서에선 성과 측정을 위한 주요 지표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청은 내년 추진 과제로 ‘창업절차 간소화 및 대학발 창업 촉진’을 성과계획서에 올렸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것으로, 경기침체로 고용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을 타개하려는 정책이다.

중소기업청은 이 과제의 성공 여부를 측정할 지표 중 하나로 ‘온라인 법인설립시스템 구축’을 제시했다. 창업절차 간소화를 위해 추진할 과제 자체를 성과 측정 지표로 잡았을 뿐 창업에 걸리는 시일과 절차, 비용 등 절차 간소화에 관한 측정 지표는 찾을 수 없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현직 영어교사 심화연수 강화 및 시스템 개선’ 과제는 연수에 참가한 교사 수가 1500명을 넘기면 성공으로 간주하도록 했다. ‘교사의 영어 수준 향상도’ 같은 지표는 아예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정부 성과계획서 점검에 참여한 한 교수는 “시작할 때부터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성과 지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예산투입 효과를 제대로 살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뿐이 아니다. 예산안의 ‘단위사업’ 명칭과 내용, 금액이 성과계획서의 ‘관리과제’와 일치하지 않은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예산안과 성과계획서가 일치하지 않으면 성과계획서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또 결혼이민자 지원사업처럼 여러 부처가 같은 정책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는 사업에는 부처별 특성에 따른 시행의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아 예산의 중복 집행이 우려된다.

정부는 성과계획서를 토대로 내년 2월 말까지 ‘성과관리 시행계획서’를 확정한다. 부디 ‘새해 계획’을 제대로 세워 혈세의 낭비를 막으면 좋겠다.

허진석 정치부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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