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했던가. 대선의 압도적 승리에 도취된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고소영, 강부자, 오륀지’로 국민과의 괴리를 드러냈다.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가 진성(眞性)이 아니라 민주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반작용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친박연대까지 출몰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들도 총선에서 패배했다.
지난 1년간 달라진 게 무엇인가. 그토록 강조하던 화합과 소통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라고 하지만 여의도의 이전투구는 세계적인 조소거리다. 민의의 전당은 폭력의 전당으로 전락한다. 정치인 눈에만 민심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한나라당으로 옮겨갔다면 이제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으로 더는 갈 데가 없는 국민만 길 잃은 철새다. 정권의 무능은 그들만의 몰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경제위기에 대한민국호의 추락으로 연결된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무능하게 만들었는가. 자기수양과 자기검열이 선행돼야 한다. 어느새 한나라당은 웰빙 야당에서 웰빙 여당으로 자족한다. 국민과 야당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의지도 태부족하다. 권력이 있는 곳에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권력의 단맛만 취하려는 오만에 빠지지 않았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풍찬노숙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당한 정책이라면 왜 소신껏 추진하지 못하는가. 대운하가 그토록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 걸고 추진할 용의는 없는가. 대운하 계획이 잘못이라면 깨끗이 포기하고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이기려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인기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프랑스 파리의 상징물로 에펠탑을 건립하려 하자 여론은 싸늘했다.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망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결과는 어떠한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건립된 에펠탑은 오늘날 파리의 최고 상징물이 됐다.
국가원수이자 행정권의 수반인 대통령은 정치제도의 심장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미뤄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자원담당 총리쯤으로 격하된 국무총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예전의 의전총리 방탄총리보다 못하다. 세기적 경제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경세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남북대화가 경색돼도 북쪽 탓만 할 뿐이다. 국가정체성을 회복하겠다면서 평지풍파만 일으킨다.
이래가지고는 10년 만에 탄생한 보수정권의 앞날이 캄캄하다. 좀 더 치열해야 한다. 적당히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민심은 천심(天心)이라 하지 않는가. 정치인이나 관료보다 일반 국민이 더 현명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국민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솥뚜껑 갖고 자라 잡는’ 식의 미련한 짓은 안 통한다.
법과 제도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 하듯이 정치도 순리를 따라야 한다. 역리(逆理)의 독배를 들어서는 안 된다. 잔재주를 부려서도 안 된다. 대의(大義)에 충실해야 한다. “잡초에 거름을 주어 더욱 무성하게 만드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좋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어색한 옷도 어느새 몸에 어울리기 마련이다.”(햄릿)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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