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은 생업에 바쁜 국민을 대신해 나라 살림을 감시하는 ‘종노릇’을 하겠다고 자원한 사람들 중에서 뽑혔습니다. 대체로 좋은 교육을 받았고,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해 온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단 ‘여의도 물’이 들면 금방 변질되기 때문에 주인인 국민이 제대로 부리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반품과 교환, 애프터서비스가 어려워 잘못 뽑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기 십상입니다.
이 사람들은 선거 때는 겸손한 척하지만 일단 금배지를 달고 나면 표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뻣뻣해집니다. 얼굴이 두꺼워지고 몰염치해집니다. 남 앞에 나서 박수 받고 폼 잡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생색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뇌의 회로에 이상이 생겨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절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선거 공약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의원은 희귀종에 속합니다.
카멜레온 같은 재주를 드러냅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말과 태도를 능수능란하게 바꾸는 것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처세는 가히 달인의 경지입니다. 계파와 당적을 바꾸는 것도 식은 죽 먹기입니다. 양심, 소신 등의 고상한 가치를 까맣게 잊게 됩니다.
폭력성의 증가는 특히 두드러집니다. 거친 욕설과 우격다짐은 기본기이고, 해머 전기톱이 동원된 싸움판에서 격투기 선수를 연상시키는 무공(武功)을 보여준 의원도 있습니다. 여성 의원은 얌전할 것 같다고 생각하다간 큰코다칩니다. 의원들은 개개인을 보면 점잖은데 이상하게 싸움판만 벌어지면 집단적으로 흥분해 과격한 투사가 됩니다. 국민은 기가 막혀도 자기들끼리는 “자∼알 했어”라며 서로 격려하는 희한한 동지애를 곧잘 과시합니다.
어디서든 대접받으려 하다 보니 자신이 종이라는 사실을 아예 망각하기도 합니다. 게을러져서 제때 일도 안 하고,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도 눈 하나 까딱 안 합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날림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배짱입니다.
무위도식(無爲徒食)을 일삼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고, 억대의 세비가 꼬박꼬박 나오니 국민의 고통이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특혜와 이권이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다니다 비리에 연루되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원들도 두려워하는 게 있습니다. 선거입니다. ‘물갈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컹 내려앉습니다. 여의도에선 엔도르핀이 과잉 분비되다가도 배지만 떨어지면 삶의 의욕을 잃으니 참 특이체질이지요.
결국 의원들을 바로잡으려면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야 합니다. 자신이 오히려 상전인 양 착각하는 이들에게 주인이 무섭다는 걸 준열히 깨우쳐줘야 합니다.
국회 파행과 관련해 거론되는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 문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축소, 폭력 의원에 대한 제재 강화 등의 대책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들이 한 짓을 다음 투표 때 똑똑히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언론도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한심한 종들 때문에 주인들이 속상했던 한 해가 갔습니다. 새해엔 정말 의원들이 국민을 제대로 섬기면 좋겠습니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